가족끼리 찍은 영상이 알고리즘을 탔다

by 고니크

저 쳐다보지 마세요! 어? 저기! 방금 저 카메라로 찍으셨죠? 당장 지우세요! 아, 죄송해요. 싸인이 아직 없어서... 찍은 사진은 저만 스노우로 보정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하하! 저는 곧 인플루언서가 될 거고요. 그래서 방금 인플루언서 연습해 본 겁니다. 겨울이지만 밖에 나갈 때 선글라스 끼고 나가야 할 것 같아. 사람들이 나 알아보면 어떡하지. 푸훗. 파파라치 붙는 거 아니냐고. 아, 벌써 피곤해. 인기인의 삶은 피곤한 법... 풉...


짧게 올린 영상이 10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긴 탓에 내 마음은 며칠 째 염병천병을 떨고 있다. 100만이라니, 100만 조회수면 내가 내 방송에 에스파를 섭외했을 때, nct를 섭외했을 때 또는 샤이니랑 세븐틴을, 프로게이머 케리아를 섭외했을 때 얻었던 수치다. 연예인 빨 말고 100만 조회수를 얻으려면 19금을 주제로 토크를 풀어야 하며 아니면 전 남친과 재회하는 법 같은 만인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아이템을 잡아야만 했다고.


100만이라는 건 그런 정도의 어려움인데 나는 그걸 너무 손쉽게 얻었다. 엄마 제삿날 정우와 아빠, 나 세 사람이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었는데 그게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거다. 영상의 내용은 별 거 없다. 처음엔 각자의 고민을 하나씩 말하다가 이게 점점 변질되어 아빠에게 바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기가 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아빠 연금 받으면 그냥 나 줬음 좋겠다'나 '아빠 지금 사는 집의 반 값 되는 곳으로 이사 가고 나머지 반값 나 줬음 좋겠다'같은 말...ㅎ


아빠를 만날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이기도 하고, 아빠는 그때마다 웃겨해서 우리의 대화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고찰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론 고정우가 안철수를 닮았다는 것. 생각해 보니 진짜 닮은 것 같아서 깔깔 대고 웃었다. 두 번째로 알게 된 것은 우리 세 사람이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사실이다.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이거 전혀 웃을 일이 아니잖아. 방금 전까지 깔깔대고 웃었던 얼굴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고정우가 안철수를 닮았는데, 우리 세 사람이 똑같이 생긴 거면... 저.기.요. 당신을 모욕죄와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합니다. 나는 이것을 도저히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모욕이다!


나는 한평생 아빠를 진짜 못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빠한텐 정말 미안하지만 아빠는 못생겼다. 그리고 정우야, 너한테도 미안한데 너도 못생겼어. 아니 사실은 안 미안해. 두 사람 진짜 못생겼어요. 저랑 엮지 마세요. 진짜. 당신들이 가볍게 하는 말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왜 모르시나요? 제발 닮았다고 하지 마세요. 진짜로요.


난 34이지만 아직도 아빠를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아빠 조심해. 딸 간수 잘해. 이러다가 진짜 친부모님이 친딸 찾겠다고 나타나서 나 데려갈 수도 있다? 나 갑자기 재벌 2세로 신분상승할 수도 있어? 그때 뽀찌 좀 받으려면 나한테 지금부터 잘해놔야 할 거야. 어?" 그러면 아빠는 껄껄껄 웃으면서 한 2분 정도는 나한테 아부를 떨어줬었는데... 나랑 아빠랑 닮았다는 것은 내가 빼도 박도 못하게 이 집 유전자를 받았다는 것인데, 재벌 친부모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지난 시간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댓글 중에 이런 댓글도 있었다. '장난이어도 자식이 저렇게 말하면 울 것 같아 ㅠㅠ 진심이 2%라도 담겨있을 것 같아서ㅠㅠ' 나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난 진심 98% 정도로 말한 거였는데.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런 딸을 왜 낳으셨나요.


아빠의 '어떡하지? 이 두 암덩어리들을' 발언을 지적하는 댓글도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며.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엄마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고, 엄마는 암에 걸려서 돌아갔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어도 무의식 중에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표현들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냥 우리는 계속 계속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 돈을 빼앗고 싶고,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이라니. 조금 사연 있어 보이는 문장이다. 맘에 들어.


'우리 아빠가 살아계셨음 좋겠다'같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댓글들도 몇 봤는데,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할 줄 아는 성인으로서 마음이 시큰했다. 엄마의 제사를 17번째 지내면서도 나는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여전히 매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는 9살. 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황. 이제부터 언마라고 부를게. 나중에 우리가 동갑이 되고, 언마가 내 동생이 되고, 내 딸이 되는 나이가 되어도 나는 언마가 살아있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엄마의 제사를 무사히 마치고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 나랑 아빠는 대판 싸웠다. 큰 소리를 내고 얼굴을 굳히곤 말도 없이 헤어졌다. 냉정하게 뒤돌아서면서도 아빠가 이제 늙었는데 운전 잘하고 갈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그 걱정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나는 이미 엄마를 겪고 후회를 한 번 해봤으면서도 도무지 성장할 줄 모르는 미숙아다. 지금 이 순간이 내 평생 후회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는데도 나는 어리석은 방향으로만 걸어갔다.


다행히 아빠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그 이후로부턴 하루 종일 정우의 투덜거림이 시작됐다. 우리 오랜만에 모인 거였는데 왜 불행한 얘기만 했어야 했냐고. 우리는 맨날 미래만 보고 사니까 현재 삶에 대한 행복도가 낮은 편인 것 같다고. 도대체 둘이 왜 싸운 거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라면서. 오랜만에 본 건데 너무 아쉽다는 정우. 그런 정우를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우리가 제일 많이 웃었던 구간을 편집했다. 그리고 그게 터진 거다.


사람들이 우리 영상을 보고 웃기다며 웃는다. 이게 왜 웃긴 거지? 나랑 정우는 어리둥절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봤다. 아마 100만 조회수 중에 1만 정도는 우리가 본 걸 거야. 나에겐 아빠랑 싸우고 눈 흘겼던 시간으로 남아있는 그날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갑자기 조금 행복해지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불행을 말하고 있던 우리, 그 순간에도 사실은 행복했구나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까.


우리 가족이 곧 유명인이 될 것 같다고 아빠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아빠에게 톡을 보냈다.


[아빠 영상 댓글에 누가 '이런 자식이면 다 주고 싶다'래

이런 마음가짐 아빠도 배웠으면 좋겠어

기대해 볼게 성장한 아빠의 모습]


1이 지워지고 6분 뒤 답장이 왔다.


[아빠는 성장하기 싫다]


... 나는 아무래도 아빠를 닮은 게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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