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포일러 포함)
2005년 가을.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본 적 없었던 남고생은 자정이 훨씬 넘긴 시간 홀로 방에서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봤다. 오열에 가까운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100일도 채 안 남은 수능 걱정을 잠깐이나마 잊었다. 물론 눈물을 그친 뒤 ‘외국어 영역 문제 하나 더 풀 시간에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짧은 현자 타임이 찾아온 것은 비밀. 그만큼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내게 강렬한 영화다.
2018년 3월. 우리나라에서 다시 만든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개봉했다. 13년 만이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사이 tvN이 개국했고, 8개였던 프로 야구팀은 10개로 늘어났으며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대통령은 세 번이나 바뀌었고, 5만 원권 지폐가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열아홉 고등학생은 사랑을 아는 서른둘이 됐다.
13년 사이 ‘타임 슬립’(Time Slip)도 대중에게 익숙한 장치가 됐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 ‘말할 수 없는 비밀’, ‘어바웃 타임’ 등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 있었고 ‘소스코드’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SF를 강화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13년 동안 결은 다르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설정을 차용한 수많은 영화들이 개봉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영화의 중요한 뼈대이자 반전인 타임 슬립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했다. 건드리자니 이야기의 근간을 흔들게 되고, 그대로 옮기자니 특색 없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클 텐데.
감독은 뼈대는 그대로 두고 주인공들의 주변 인물을 보강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주려 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홍구(고창석)다. 원작에서 주인공들의 아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케이크를 배달하던 빵집 아저씨를 남자 주인공 우진(소지섭)의 절친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원작에 없는 웃음 포인트들이 생기며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했다. 또 아들 지호(김지환)가 학예회에서 자신의 꿈을 말하는 장면도 원작에 없던 부분이다. 수아(손예진)가 떠난 뒤에도 아빠 우진을 지키겠다는 지호의 의젓함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여러모로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특색을 살리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그래도 원작 팬으로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원작 영화의 여자 주인공 미오가 남자 주인공 타쿠미를 짝사랑하는 직장 동료 나가세(한국 영화에서 손여은)를 만나 타쿠미와 아들을 부탁한다며 “난 속이 좁은 사람인가 봐요. 걱정은 많이 되지만 타쿠미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이 싫어요”라고 질투하는 모습이 빠진 것이 특히 아쉽다.
원작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이지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부족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는 탄탄하며 손예진, 소지섭 두 배우의 연기가 힘 있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특히 손예진은 해를 거듭할수록 스펙트럼을 넓어지고, 연기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덕분에 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13년 전처럼 또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