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퍼들과 엮인 래퍼

영화 '변산'

by 곰B
영화 '변산' 포스터

힙합을 즐겨 듣지 않고, 서바이벌 오디션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Mnet '쇼미 더 머니'를 챙겨 본 적이 거의 없다. 가끔 채널 돌리다가 보는 정도다. 비록 힙알못이지만 '쇼미 더 머니' 3차 예선 일대일 배틀은 흥미진진하다. 어떤 비트를 고를지 두 래퍼들 간의 신경전을 보는 재미도 있고, 같은 비트 아래 다른 스타일의 랩이 탄생하는 것도 놀랍다. 힙잘알들에게 물어보면 그건 래퍼들마다 플로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수(박정민)도 '쇼미 더 머니' 참가자다, 그것도 6년 연속으로. 하지만 매번 3차 예선에서 발목 잡혔다. 이번에도 3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어머니'란 제시어를 보기만 해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랩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반면 선미(김고은)로부터 아버지(장항선)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화를 참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조차 오지 않은 왕년의 조직 폭력배 큰 형님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앙금 때문이었다.

'변산' 스틸컷

'부모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비트다. 어머니에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에 불편한 기색을 팍팍 드러내는 학수의 성장 배경이 관객들에겐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게다가 불우한 가정사는 신파극의 단골 소재다. '변산' 역시 신파라는 지적을 피하긴 힘들다. '변산'은 학수가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갈 때부터, 아니 '쇼미 더 머니'에서 어머니란 단어에 말을 잇지 못할 때부터 눈물샘 자극은 예약돼있다. 어쩔 수 없다. 학수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변산' 스틸컷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변산'을 특별하게 하는 건 학수 주 오지라퍼들이다.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던 학수를 변산에 부른 선미부터 학수의 친구들, 학수를 지명수배자로 오해하는 슈퍼마켓 아주머니와 경찰들, 아버지 오른팔 중식이 아저씨, 첫사랑 미경(신현빈), 시 노트 도둑 원준(김준한), 어린 시절 학수가 괴롭혔던 용대(고준)까지 고향으로 돌아온 학수의 삶에 계속해서 끼어든다.


오지라퍼들은 학수의 흑역사를 소환한다. 아들 된 도리를 역설하는 몇몇 오지라퍼들은 '꼰대'처럼 보인다. 아버지 때문에 문드러진 학수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학수의 과거들이 유쾌하게 전달된다. 또 학수와 오지라퍼들 사이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관계' 아래 학수는 오지라퍼들과 지지고 볶는다. 이런 투닥거림들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되짚어 보게 도와준다. 아버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의 '미안하다'는 말도 달갑지 않았던 학수가 점점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학수는 '아버지'란 뻔한 비트를 자신만의 플로우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산' 스틸컷

나아가 학수는 서울살이에 지쳤던 영혼까지 위로받았다. 서울에서의 삶은 마치 '쇼미 더 머니'와 같아서 생존하기 위해선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학수가 6년 동안 인생 한방 역전을 꿈꾸고 '쇼미 더 머니'에 집착한 걸지도 모르겠다.


한편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변산'에는 학수를 너무나 잘 아는 오지라퍼들이 있었다.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변산'에는 학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변산'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오지라퍼들과 부대끼며 사는 삶의 가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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