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고등학교 적응 실패 후, 다짐으로 시작한 하루
같은 하루지만 다른 하루의 시작.
그다음 날,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은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일어나야지, 그래 아닌 척하고 학교 가야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물끄러미 천장을 보다가,
괜찮아질까? 오늘은 좀 나아질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다가,
결국 이불을 걷어찼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보니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붉은 기운이 가시지 않는 눈동자만이
어제의 상황을 증명하고 있었다.
뭉그적 뭉그적, 푸른 새벽빛을 헤치고
느릿하게 준비를 하다가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와 마주쳤다.
전날밤, 그 무거운 말들이 오고 갔던 사이 같지 않게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스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나만.
정말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의 그 말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데
엄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문을 닫았다.
그저 내가 알아서 삼키고,
내가 알아서 아무 일 없는 척하면 되는 거였다.
씹어 삼킨 말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는 엄마의 뒷모습을 등지고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밖에 나오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매일 울면서 걸었던 그 똑같은 길인데도
오늘은 어쩐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조금은,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버스에 올라탔을때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잠시 고개를 기댔다.
근데.. 이상하게 또 눈물이 고였다.
'아 왜 또 이래'
바보같이 또 울컥했다.
다짐을 했지만, 몸은 그걸 잘 못 따라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
여전히 진한 담배냄새와, 거친 말들은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진한 화장을 한 아이들이 교실문을 밀치며
들어오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말은 안 했지만, 눈빛이 말을 했다.
'넌 뭔데 눈 안 깔아?'라는 말 없는 평가.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조용히 내 자리에서 멍 때리기 시작했다.
뒷자리에서 난무하는 욕설들이
뒤통수를 쿡쿡 찌르는 듯 들려왔고
한쪽에서는 누군가
크게 가래침을 뱉은 뒤
신발로 바닥에 문질렀다.
그걸 보는데,
경악도 이젠 사치처럼 느껴졌다.
무감각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직 놀라고 있었다.
내 안엔 여전히 이질감이 남아 있었다.
수업시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나는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하루를 흘려보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 혼자 조금 달라진 마음으로 버텼다는 게
오늘의 유일한 수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괜히 아삐의 말이 떠올랐다.
"힘들면 말해, 자퇴시켜줄게."
그 말 한마디가,
내 등을 하루 종일 밀어줬던 것 같았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아무렇지 않게 물어줄
초등학생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조금 안심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