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사랑하니 막막하고, 막막하니 외롭다.
주말 저녁, 좁은 방안 허리가 굽은 밥상 위에
보리밥과 된장국, 김치 몇 조각이 놓였다.
며칠 전 골목에서 있었던 소동이 마음에 걸렸는지
희옥은 태산을 저녁에 초대했다.
희수도 짧은 가출 후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순한 양처럼 희옥을 도왔다.
"자, 많이 드세요."
희옥은 서툰 웃음을 지으며 국을 떠주었다.
태산은 어색하게 숟가락을 들며 "고맙습니다"라 했고,
희수는 옆에서 얌전하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했다.
희옥이 국을 건네주면 태산이 괜히"뜨겁다, 조심하라"며
장난스럽게 웃고, 희수가 옆에서 "언니 손 데겠다"하며
순한 척 거들었다. 희옥은 모처럼 평화가 찾아온 듯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태산이 희옥의 그릇에 반찬을 덜어주자,
희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푹 찌르더니, 입꼬리를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좋겠네, 남자랑 알콩달콩하고~나는 있으나 마나고."
희옥은 젓가락을 멈추었다.
"희수야, 또 왜 그래? 밥 먹는데."
희수는 코웃음을 치며 더 쏘아붙였다.
"왜? 뭐 찔려? 난 뒷전이고 남자랑 노닥거리잖아?
날 동생으로 생각하기는 해? 하여튼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건 다 언니 때문인 거 알지?"
그 순간 희옥의 눈빛이 번쩍였다.
[탁!]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김희수! 네 잘못을 왜 자꾸 남 탓으로 돌려!
내가 네 인생 대신 살아주냐!?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왜 그래 도대체!"
순간 방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태산은 눈치를 보며 희옥의 손목을 잡았고,
희수는 잠깐 움찔했다. 그러다 이내 웃으며
김치를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에이~언니 무섭다. 알았어, 그냥 밥이나 먹자니까?"
말투는 장난스럽게 흘려보냈지만,
눈빛은 끝내 삐딱했다.
어색한 정적 속에 밥상을 마무리되었다.
태산이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희옥은 문 앞까지 따라 나왔다.
"쟤 원래 저런 애 아니야... 그냥 질투해서 그래.."
희옥은 변명처럼 말했다.
태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엔 다 같이 바비큐라도 먹고 하자.
고기 앞에서는 누구나 착해진다잖아."
희옥은 그 말에 웃음을 흘리다가,
다시 고개를 떨궜다.
"응.. 그래. 조심히 들어가."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푹 자"
멀어지는 태산의 뒷모습처럼
희옥도 작아졌다.
방안에 들어서자,
희수는 여전히 숟가락을 굴리며 김치를 찔러댔다.
희옥은 숨을 고르다 결국 터져 나왔다.
"그 사람 앞에서 그런 말 좀 하지마! 언제까지 네 잘못을
언니 탓으로 돌리거야? 나도 힘들어, 나도 서러워!
그런데 넌 왜 맨날 나만 원망해! 왜 엄마한테는 말도 못 하고
나한테만 그러냐고! 아빠한테는? 오빠는?! 내가 우습니?!
내가 만만해?! 내가 니 탈선한 거 다 눈감아주고 살아보려 했는데
뭐 하는 건데 이게!"
희수는 대꾸도 못하고, 입술을 삐죽거릴 뿐이었다.
한동안 김치만 쿡쿡 찔러대던 희수는,
결국 아무 말도 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희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귓가에는 아직도 희수의 비아냥이 맴돌았고,
가슴은 먹먹하게 조여왔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걸까.
희옥은 분노와 슬픔을 삭히며 웅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