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모래 위의 평화
희수의 또 다른 가출 이후,
두세 달 동안은 희옥 곁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아침마다 같이 공장에 나가고,
간식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언니, 간식 내가 싸왔다!"하고 자랑했다.
그럼 공장에 있던 언니들은
"희옥이 동생 참~순하다~" 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순간 마음이 풀리고,
'혹시 이번엔 달라질까? 희수가 철이 들었겠지?'
하며 긍정적인 생각하는 희옥이었다.
이번엔 뭔가 달라 보이는 희수를 보며 뿌듯했다.
퇴근 무렵이면 태산까지 합류해,
셋은 종종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지글거리는 삼겹살 냄새와,
쨍그랑 울리는 소주병 소리가 뒤섞여
가게 안은 한층 더 시끌벅적했다.
연기가 자욱한 공간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웃음을 안주삼아 식사를 즐겼다.
태산이 고기 한 점을 집어 희옥의 접시에
툭 올려주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옥아, 쌈 좀 싸줘라. 네 손맛이 필요해~"
"뭐래, 손맛은 무슨."
희옥은 웃으면서도 고기를 쌈에 싸서 건넸다.
그 순간 희수의 눈이 번쩍였다.
질투 섞인 눈빛으로 언니를 훑더니,
고기를 억지로 자기 쌈에 올려 태산 입에 밀어 넣었다.
"오빠, 나도 좀 챙겨줘야지! 언니만 챙기니까 심심하잖아~"
태산은 순간 당황했지만,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억지로 웃어넘겼다.
"하하 그래그래 내가 옥이만 챙겼나?"
희옥은 얼굴이 연탄불처럼 뜨거워졌다.
희수는 그런 언니의 표정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물 잔을 비웠다.
어느 날의 퇴근길.
퇴근길 야식은 셋의 작은 의식처럼 이어졌다.
길모퉁이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나눠먹고,
철판에 보글거리는 떡볶이를 집어먹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어묵국물은 세 명이 돌아가며
컵하나에 나누어 마셨다.
시내버스가 끊기고, 네온사인만 희미하게 깜빡이는 늦은 밤.
사진관 유리창에 비친 셋의 모습에 킥킥 웃었다.
태산이 '야식은 살로 가는 게 아니라 추억으로 남는 거다'라며
능청을 떨면, 희옥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희수의 눈빛은 알 수 없이 흔들렸다.
겉으로는 언니 옆에서 같이 웃었지만,
희옥과 태산이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마다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렇게 무사히 집으로 들어와 씻는 희수를 보며
희옥은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갑자기 또 홀연히 사라질까 하는 그 걱정이
책임감과 막막함으로 동시에 목을 조여왔다.
희옥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버텼지만 그 웃음 속에서 균열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두세 달이 흐른 지금.
희수는 여전히 희옥의 옆을 지켰다.
아침엔 나란히 공장으로, 저녁에는 셋이 놀고,
밤이면 같은 방 안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
하지만, 불안함의 싹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자라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지도 몰라.'
매일같이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서서히 진을 치고 있었다.
그 평화는 마치, 바람 한 줄기에 무너질,
모래 위에 세운 집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