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이녁, 그녁

ep.14 사라진 동생

by 곰C



희수는 공장에 나가면서도 자주 꾀병을 부렸다.

"언니, 오늘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처음엔 진짜 아픈 줄 알았다.

희옥은 동생의 이마에 손을 대보며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게 꾀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공장 언니들은 '희수 또 아프대?' 라며 수군거릴 때마다

희옥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점심, 늘 가는 공장 식당.


간식 도시락은 진즉 싸지 않았고,

늘 가는 그 식당에 식당 배달 청년이 들락거릴 때마다

희수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 청년은 예전에 희옥에게도 흘끗거렸지만,

희옥은 태산이 있다는 이유로 단말에 잘라냈다.

희수는 그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후 희수에게 잔소리를 해댔지만,

'제발 좀 사서 걱정 하지 마'라는 말에

'이번엔 진짜 달라지겠지..?'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돌아오자, 방은 텅 비어있었다.

옷장엔 희수의 옷이 반도 남아있지 않았고,

화장품가방도 사라져 있었다.

그 작은 화장대 위엔, 며칠 전까지 희수가 쓰던 머리끈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희옥은 멍하니 그것만 바라봤다.

"또 시작이구나...?"

입술을 깨물며, 며칠 뒤엔 돌아올 거라 스스로 위안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주, 두주...

시간은 흘러갔고, 희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 달 후, 밤늦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희옥은 놀라 뛰어가 수화기를 붙잡았다.

수화기 너머, 반가운 듯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니, 나야. 희수"


희옥은 순간 숨이 멎는듯했다.

"너... 어디야, 지금...?!"


희수의 목소리는 들뜸 웃음으로 가득했다.

"나 태안에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 오빠랑 방 얻어서 살거든?

달방인데 뭐 괜찮아~돈도 내가 모아둔 거 조금 있었는데~

그걸로 해결했어! 언니, 놀러 와~바닷바람 좋다니까?"


희옥은 목구멍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다.

속에서는 온갖 말이 치밀어 올랐다.

'넌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거냐, 그 남자가 대체 뭔데 너를 이렇게

끌고 가는 거냐, 너는 네 인생뿐 아니라 내 인생까지 망가뜨리거

있다는 걸 알기나 하냐'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희옥은 알았다.

희수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는 것을.

붙잡을 수도, 설득할 수고 없는 거리를 건너버렸다는 것을.


"희수야, 너.."

희옥은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희수는 발랄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언니, 곧 끊어야 돼. 다음에 또 전화할게! 주소 적었지?"


"야 너 뭐 하자는 거야?"


뚝.


수화기에서 메마른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뚜-뚜-뚜-]


희옥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희수의 무책임한 웃음소리만 귀에 맴돌았다.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자, 방 안은 적막만 돌았다.

희옥은 무릎을 꿇고 머리끈을 움켜쥐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조차 흐르지 못하고 가슴속에서만 고여 있었다.


그 여름, 희수의 방황은 폭풍처럼 스쳐갔다.

세 달이었지만, 내겐 몇 해를 갉아먹은 시간이었다.

붙잡으려 애쓸수록 더 멀어졌고,

끝내 흘러가는 물을 움켜쥐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언니라는 이름 하나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희옥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착각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더 분했고, 더 허망했고, 결국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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