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그냥 자는 척을 했다.
이녁, 그녁
새로운 시작이자, 흐려진 출발이었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
뜻깊은 꿈을 안고 떠난 서울행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자취를 시작했던 시절.
외롭기만 하던 좁디좁은 단칸방에
뜻밖의 식구가 생겼다.
세 살 많은 오빠.
대학 때문에 인천에 있던 그는
월세를 아끼겠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잠깐만 재워줘"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오래 머물렀다.
그의 짐을 풀고, 이불을 깔았고,
하루 이틀이 한 달, 두 달이 되었다.
언제 나갈 건지 묻지도 못한 채
그 좁은 방에서 둘이 살게 되었다.
화장실도 없고 부엌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공간.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인방.
곰팡이 자국과 눅눅한 냄새가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겨우 열일곱이었다.
그 방에서는 어른이 될 수 없었지만,
어른처럼 살아야만 했다.
일이 싫어도 일을 해야만 했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해도
오빠 밥을 차리고, 치워야 했다.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퇴근 후 공장 앞 떡볶이집에서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자잘한 소품을 사며 웃었다.
친해진 친구를 집에 초대해
작은 만찬도 함께 했다.
그날도 친구가 놀러 온 날이었다.
셋이서 라면을 끓여 먹고,
TV도 없는 방에서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었고,
오빠, 나, 친구 순으로 방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이불하나를 셋이 나눠 덮었고,
그녀는 친구와 몸을 바짝 붙인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벽이었다.
이상한 인기척에 잠이 깨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숨소리.
어딘가 서성이는 듯한, 불규칙한 기척.
이상했다.
'뭐지?'
처음엔 누가 뒤척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리는 너무 생생했고,
이해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눈을 감은채 귀만 열었다.
그러고, 깨달았다.
이불 한 장 아래,
친구와 오빠가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자는 척을 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지만,
소리 내서도, 움직여선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나는 자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밤을 버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소리는 멈췄고,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그날밤 단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다.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라면을 끓였다.
친구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오빠도. 친구도.
그 일은 말로 꺼낼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그 방에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혼자서 삼켰고,
혼자서 얼룩처럼 껴안고 살았다.
"나는 그냥 자는 척을 했어.."
엄마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 안에
열일곱 살의 무서움,
수치심,
무기력함이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밤을 대신 기록하려 한다.
누구의 죄를 묻기보다,
그 어린 날의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다시 들춰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