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이녁, 그녁

ep.3 나는, 끝까지 기다렸다.

by 곰C

이녁, 그녁이녁, 그녁

기다려도 오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오빠는 늘 가불만 해대는 인간이었다.

생활비는커녕, 자기 밥그릇 하나 챙기기도 벅찼다.


그런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다.


지긋지긋한 집에서,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로,

없는 집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서울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 시절, 그녀의 나이 스무 살.

시골집엔 부모님과 형제자매 넷이 살았고,

그녀는 서울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다.


하루 열두 시간은 미싱 앞에서.

남은시간은 잠든 채로 견뎌내던 나날.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에서 연락이 왔다.


12월, 셋째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

아직 열여섯.

가출이라 하기도 애매한 나이었다.


불안이 퍼졌고

군대 간 오빠 대신

그녀가 엄마와 함께 수소문했다.

알고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서울 어딘가에 있더라'라는

말도 안 되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 후.


한여름,

그녀와 휴가를 나온 오빠,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와 함께 동생을 찾으러 갔다.

그들은 서울 봉천동 산동네 정류장에 내렸다.

물어 물어 이 근처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무더운 열기가 푹푹 찌는듯했고.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그때였다.


초췌한 남자와 만삭의 여자가 바로 앞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얇은 원피스 때문인지 도드라져 불룩한 배,

무거운 걸음을 떼던 그 여자.


"...... 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첫째 오빠가 빠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야! 김희수!"

그 만삭의 여자는,

사라졌던 셋째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오빠를 보고선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그녀는 길 한복판에서 희수에게 욕을 쏟아냈다.


결국,

그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따라갔다.


서울의 산동네.

판잣집들이 엉켜 있던 달동네.

그 사이 그들의 집이 있었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판자도 겹겹이 겹쳐져 빛이라고는 없는

그런 집이었다.


시선을 피하며 짝다리를 짚고 있던 그 남자에게

오빠가 말했다.

"어쩌려고 이런 거야? 이래서 애 낳고 살겠어?"


"아, 그럼 데리고 가던가! 나도 필요 없어!"

짜증 난다는 듯 소리치던 남자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황당함을 뒤로하고

그녀는 희수의 짐을 챙겼다.

희수도 별다른 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날, 병원을 찾았다.

희수는 조용히 말했다.

"그냥... 지우면 안 돼요?"


하지만, 의사는 단호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제, 낳는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단호했고,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선택은 무의미했다.

닥친 현실 앞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받아들이는것뿐이었다.

가난과 현실이 이미 답을 내려놓았으니까.


결국 아이를 낳기로 했다.


"희옥이 언니, 나 괜찮겠지?"

"........"

희옥은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괘씸하고, 밉고, 증오스럽고, 안쓰러웠다.


희옥과 희수는 서울 단칸방에 함께 살았다.

같이 미싱공장에서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았다.

희옥은 희수의 속옷까지 빨아주고,

새 옷도 내어주었다. 항상 새 옷은 희수차지였다.


그렇게 적응을 하는 듯했지만,

희수는 또다시 사라졌다.

또다시 배부른 상태가 될까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아무리 찾고 헤매어도 끝내 희수를 찾지 못했다.


보름 후.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희수가 앉아있었다.

걱정과 안도, 동시에 밀려오는 분노가 치솟아

희수에게 빠르게 전력으로 달려가 잡히는 대로 때렸다.

얼굴이며, 머리며, 등이며 보이는 데로 마구 쳤다.


"미친것! 왜 왔어? 니 맘대로 살지 왜 왔냐고!"

"......."

눈물만 흘리며 희옥의 주먹질에 맞고만 있을 뿐이었다.


분이 풀린 희옥은 희수 옆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희수를 째려보았다.

"너 뭐 하는 애야? 뭐 하고 이제와?"


"아니.. 친구가 돈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희수의 말을 이랬다.

친구말대로 가보니 스트립쇼걸이 있는

바였는데, 본인은 스트립쇼는 안 했다면서

바텐더로 일했다고.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돈을 쥐어주며

'너 같은 애가 있을 곳이 아니다. 도망쳐라.'

라고 했다면서.

무서워서 그 말을 듣고 곧장 도망 나왔다고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화를 참으며 말했다.

"그래 정신 차리고 살자? 어?!"


"응.... 미안..."

울먹이며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라졌다.


이번에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두 번째 가출은 한 달 만에 돌아왔다.

희옥은 또다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희수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하는 듯

모조리 다 감수했다.


희옥의 분노가 사그라들자 희수가 말했다.

"언니.... 나, 돈 좀 받아줘..."


"뭐? 너 또 사고 쳤어? 진짜 미치겠다 너!"


이번에는 일수놀이하는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단다.

그들은 돈이 없다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내쫓았다 했다.

속 터지는 이러한 상황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희수가 미웠다.


희옥은 다음날 그 사무실로 찾아갔다.

희수는 희옥의 뒤에 붙어 얼굴만 빼꼼 내밀 뿐이었다.


양복 입은 건달 같은 남자들이 열댓 명은 있었다.

험상궂은 남자들이었다.

"뭐요?"


"돈 내놔!"


"아~희수언니야?"

뒤에 있는 희수를 보더니 같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 신고하기 전에 돈 내놔 빨리!!"

미친년 산발을 하고 매섭게 목청 높이니

남자들이 당황하는 듯 보였다.


그 기세를 몰아 희옥은 몰아세웠다.

"돈 줄 때까지 절대 못 나가!!!!!!!!!"


사무실 한가운데 벌러덩 누워 소리를 질러댔다.


당황스럽다는 표정의 남자들 중 한 명이

"진짜 돈 없고, 일단 이 전화기라도 가져가"

"그래 그래 이거 월급보다 비싸 자자 가져가"

새것처럼 보이는 다홍색의 집 전화기였다.

희옥은 잽싸게 받아 사무실을 나왔다.


그날 이후,

월세집에는 귀하디 귀한 전화기가 생겼다.


지긋지긋한 상황이었지만

그 전화기를 보는 희옥의 눈엔

묘한 감정이 떠돌았다.


분노 끝의 체념.

그리고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


그 후 희수는 미싱공장으로 나갔다.


공장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어느 날,

그 식당의 배달을 하던 사장 조카가

희옥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희옥은 단칼에 거절했다.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이 돌아오는듯했지만,


희수는 또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결심했다.

'이 아이는 이제 내가 잡을 수 없겠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을 이랬다.

회사 식살에서 배달하던 남자와

함께 도망쳤다는 것.


여러번의 가출을 붙잡았고,

울며 달래며 다시 끌어 안았다.

그러나 결국, 결론은 같았다.


가진것 없는 남자, 희수가 모은 푼돈으로 버티는집,

그리고 세번의 내보냄.


희옥은 그 모든 걸 지켜봤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그래도 끝까지 기다렸다.

왜? 가족이니까.

그 말 하나 붙잡고

살아낸 세월이 있었다.

그 말에 울고 웃은 나날들이 있었다.


그게 엄마에게는,

끝까지 놓지 못하는 말이었다.

희옥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희수. 하지만 그 사랑은 닿지 못하고, 희수는 우산을 쓰고 있다. 화분 속 '보물 1호'는 지워져가지만, 기억하고픈 보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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