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온기, 색깔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아이러니 ->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 관람 당시 여건이 되지 않아
다음으로 기약했던 국립대구박물관을 연말 연휴를 활용해 1번으로 찾았다.
대구와 경북의 향토 유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가야의 철기와 토기가 뿜어내는 투박하고도 강인한 기개와
신라의 정교하고 자비로운 불교 미감이 교차하는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섞인 듯한 그 오묘한 조화는
이 지역만이 가진 독특한 생명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것은 전시장 한편을 가득 채운 '회혼례' 영상이었다.
아이맥스급의 압도적인 규모로 펼쳐지는 결혼 60주년의 풍경은
과거의 유구한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내며
역사적 경이로움을 넘어선 벅찬 감동과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전국일주 당시에 간송미술관 컬렉션을 만났던 대구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미술관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마주할 때면
육중한 기계들이 내뿜는 차가운 흑백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비비드 한 컬러 속으로
은은하게 이염되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전시물들이 머금은 총천연색의 빛깔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색감들을 탐닉하기 바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가장 깊게 울린 것은 색이 사라진 곳에 있었다.
하얀 한지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창으로 스며든 빛과 종이 위에서 번진 빛이 조우하는 '음의 정원'.
그곳에서 흑백이 선사하는 뜻밖의 따뜻한 감성을 마주했다.
화려한 색채가 채울 수 없는 여백의 깊이를 경험하며
색깔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기분 좋은 아이러니를 배운 셈이다.
국립대구박물관과 대구미술관을 관람하고서 코로나로 인해 흉흉하고 어지러웠던
2020년의 마지막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한 근사한 곳으로 가기 위해 국립경주박물관 대신 부산 방면으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