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과 헤어질 결심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다 보니 대구미술관에서 경남도립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조차
어느덧 옆 동네 마실 나가듯 가볍게 느껴졌다.
미술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냄비와 프라이팬들.
그 옆에서 무심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년의 모습까지 더해지니
'이건 도대체 무슨 조합일까?' 하는 의문이 샘솟았다.
생경한 풍경을 뒤로하고 들어선 1층 전시실.
자칫 난해할 수 있는 독특한 오브제들의 조합을 마주하는 순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호기심이 기분 좋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오르며 입구에 덩그러니 모여 있던
수많은 살림살이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알고 보니 그것들은 누군가의 서툰 요린이 시절 새까맣게 태워 먹었던 웃기고도 슬픈 기억부터
생의 중요한 순간을 위해 정성을 다했던 귀한 시간까지 품고 있는 매개체였다.
냄비에 고인 빗물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눌러 담긴 저마다의 빛나는 추억 조각들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부곡하와이의 기억부터 70~90년대 지역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향토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손때 묻은 가구들이 자아내는 '뉴트로'한 감성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어 발걸음을 옮긴 3층 <별유천지> 전시는 또 다른 공기였다.
그곳에는 지역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려는 청년들의 치열한 '산전수전 공중전'이 담겨 있었다.
고군분투하며 써 내려간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니
그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다음 페이지는 어떤 색깔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수 밤바다를 부산이라 우기는 동생의 기억을 정정해 주면서
다사다난했던 2020년과의 작별을 감행하기 위해
작정하고 부산의 진짜 야경을 찾아 나섰다.
눈앞에 펼쳐진 밤 풍경은 넋을 잃을 만큼 영롱했지만
'먹고 쉬고 돈 내고 나가라'는 식의 서두르는 관람 동선은 못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결국 그날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훗날 서울 63 아트 전망대까지 찾아가는
대대적인 '애프터서비스'를 감행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의 불빛을 보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른 건 그날의 푸른 잔상이었다.
아쉬운 동선조차 잊게 만들 만큼 부산의 100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무엇보다 압도적이고 강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