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에 눈이 멀어 소중한 것을 놓칠 때 -> 국립부여막물관
눈부신 향로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것들
반짝이는 것에 눈이 멀어,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칠 때
혼돈의 2020년과 헤어지고 딱 4주 뒤!
지난 추석 연휴 당시에 이런저런 피차 못할 사정으로
국립청주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을 보면서 놓쳤던 국립부여박물관을 드디어 오게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와 더불어 백제 미학의 정점으로 꼽히는 '백제문양전'.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시의 초입에서 마주한 낯선 미디어 작품들에 처음엔 고개를 잠시 갸우뚱했다.
하지만 전시관 중앙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미디어파사드를 마주하는 순간
그 의구심은 이내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이라는 정적인 공간을 채운 빛의 향연은
벽돌 속에 잠들어 있던 문양들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깨우고 있었다.
흙을 구워 만든 소박한 벽돌 한 장 안에 응축된 백제의 세계관
그리고 그 속에 깃든 나노급 디테일은 감탄을 넘어 숙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1,500년 전 백제인들이 새겨 넣은 지독하리만큼 정교한 선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시대를 앞서간 그들의 감각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화려한 미디어 아트와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생동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이번 여정은 국립익산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마주했던
백제 이야기 속 빈칸들을 차근차근 채워가는 과정이었다.
흩어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부여에서 비로소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여전히 나의 시선은 얕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백제금동대향로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그 곁을 묵묵히 지키던 '창왕명석조사리감'이 국보라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투박한 돌 속에 깃든 백제 성왕의 슬픔과 위덕왕의 효심을 읽어내기엔
나의 눈은 여전히 눈앞의 반짝이는 것에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전국 곳곳의 유적지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노라 자부해 왔건만
정작 유물이 품은 깊은 사연보다 겉모습의 화려함에 먼저 매료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비록 나노급 디테일에 감탄하며 안목을 넓혔다 생각했을지라도
아직은 비워진 돌의 가치를 읽어내는 혜안보다 빛나는 것에 마음이 먼저 기우는 여행자일 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