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그랜드투어 시즌 1 3편

계획 밖의 시간이 선물한 의외의 거장들

by 곰돌아부지
20220505_131351.jpg
20220505_135607.jpg
20220505_135339.jpg


산길 위에서 쏟아부었던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착한 곳은

쾌연재 도자미술관과 제이큐브 미술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은밀하고도 정갈한

'컬렉터의 방'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정돈된 도자기의 곡선과 캔버스 위에 펼쳐진 색채들은

한반도 지형에서의 북적임을 금세 잊게 할 만큼 고요하고 깊었다.


20220505_131145.jpg
20220505_131218.jpg
20220505_131201.jpg
20220505_131130.jpg
20220505_131209.jpg
20220505_131243.jpg
20220505_131140.jpg
20220505_131234.jpg


거창한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작들을 상상했던 탓일까?

예상보다 훨씬 담백한 구성에 동생과 나는 잠시 눈을 맞추며 당황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때로는 텅 빈 공간이 주는 울림이 더 클 때가 있다는 것을.

여백의 미를 즐기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도 미술관의 공기만큼이나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20220505_135635.jpg
20220505_135631.jpg
20220505_131329.jpg
20220505_135622.jpg
20220505_135648.jpg
20220505_140528.jpg
20220505_141746.jpg


그저 목을 축이러 들어간 제이큐브 미술관에서 나는 뜻밖의 '거장'을 마주했다.

서울의 대형 전시장에서나 보았던 마르크 샤갈의 오리지널 석판화가 그곳에 있었다.

입술에 닿으려던 음료를 그대로 내려놓았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만난 샤갈의 색채는 목마름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소박함 속에 숨겨진 이 귀한 보물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20220505_150205.jpg
20220505_150244.jpg

샤갈의 석판화를 뒤로하고 테라스에 앉아 영월의 경치를 만끽하던 중 문득 시계를 보았다.

영화 시간까지 무려 두 시간의 공백이 생겨버린 것이다.

두 미술관의 소박한 전시 구성이 예상보다 이른 관람 종료를 불러온 셈이었다.

마냥 풍경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랜드 투어'의 완결성을 위해 펑크 난 스케줄을 메울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그 자리에서 폭풍 서칭을 시작했다.


영화관을 중심으로 레이더를 넓히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정보를 발견했다.

박물관의 진정한 내공이자 수준을 증명하는 '소장품 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뱃머리, 아니 '찻머리'를 즉시 그곳으로 돌렸다.

2시간의 공백을 메울 구원투수이자

영월그랜드투어의 품격을 높여줄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20220505_151055.jpg
20220505_150821.jpg
20220505_151034.jpg
20220505_150919.jpg
20220505_151048.jpg
20220505_151107.jpg
20220505_150950.jpg
20220505_150902.jpg


얼마 뒤 도착한 동강사진박물관.

맞은편에 자리한 영월군청의 존재감 때문일까?

박물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묘한 신뢰와 기대감이 실렸다.

전시는 1950년대부터 80년대를 관통하며 한국 사진사를 일궈온

작가 8인의 세계를 펼쳐놓고 있었다.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작품들 사이로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마주했던 이들과의 재회.

타지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앞서며 전시는 한결 친근하게 다가왔다.


20220505_154240.jpg
20220505_154442.jpg
20220505_154227.jpg
20220505_154408.jpg
20220505_154104.jpg
20220505_154350.jpg
20220505_154214.jpg
20220505_154127.jpg
20220505_154159.jpg
20220505_154312.jpg


전시를 보면서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라이프사진전 & 게티이미지사진전 & 퓰리처상사진전 등 굵직한 국제 전시들을 떠올려보았다.

동강사진박물관의 작품들은 그 세계적인 레벨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압도적인 깊이를 보여주었다.

왜 처음 일정을 짤 때 이곳을 리스트에서 빠뜨렸을까?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정도였다.

게다가 이 정도의 전율을 단돈 2,000원에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영월의 관대함에 다시 한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