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강원도 해안도로 여행 2편
새벽부터 태백과 정동진을 훑고 지나온 몸은 숙소에 눕자마자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모처럼 여행을 왔으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보리라 다짐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난데없는 수탉 울음소리가 정막을 깼고 회사에 갈 때나 발동하던
기상 본능이 그 타이밍에 맞춰 깨어났다.
반년만에 다시 찾은 강원도는 내게 게으른 아침 대신
남들보다 조금 긴 이튿날의 시간을 선물해주기로 한 모양이다.
수탉 덕분에 강제로 시작된 아침이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계획에도 없던 정동진역 산책에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기차 두 대가 나란히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늦잠을 잤더라면 결코 마주치지 못했을 선로 위에 고요히 멈춰 선 두 철마의 모습.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아침의 허탈함이 순식간에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오전 9시, 문이 열리자마자 하슬라 아트월드의 첫 번째 관객이 되었다.
강렬한 비비드 톤의 현대미술과 푸른 동해안의 풍경이 충돌하며 묘한 활기를 만들어냈다.
피노키오와 마리오네트의 정교한 관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나는 문득 '도면의 규약'에 대해 생각했다.
차가운 도면 위를 지배하는 엄격한 규칙들이 어떻게 이런 자유로운 형상으로 치환될 수 있었을까.
선 하나, 치수 하나에 담긴 약속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해방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여행의 영감은 더욱 깊어졌다.
비비드한 색채와 기괴한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이 눈길을 사로잡아야 할 미술관에서
나는 자꾸만 엉뚱한 곳에 시선을 뺏기고 있었다.
인형의 가녀린 손짓보다는 그 줄을 당기는 모터의 토크를
매끄러운 동작 너머의 솔레노이드 코일과 센서의 배치를 더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낭만적인 여행자이길 꿈꿨지만, 결국 숨길 수 없는 '기계쟁이'의 본능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예술이라는 마술 뒤에 숨겨진 공학의 정교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를 보며 헛웃음이 났다.
하슬라 아트월드를 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조각공원에 발을 들였다.
바다 카페에서 텀블러에 가득 담은 '산야초 아메리카노' 한 잔이 유일한 동행이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곳은 공원이 아니라 사실상 산행 코스라는 것을.
'조각공원 가지 마, 이건 등산이야!'라는 비명이 속에서 터져 나올 때쯤 정상에 닿았다.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드니 조금 전의 투덜거림이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동해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땀 흘린 자에게만 허락된 이 넓은 풍경 앞에서
기계쟁이의 계산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후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