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덜 놀아서 그래

넷플릭스로 뇌딱딱 병을 치유해보려고

by 글쓰는공여사

"남편! 난 왜 넷플릭스 3시간쯤 보고 나면 기분이 안 좋지? 숙제 안 하고 땡땡이치는 기분이 들고. 왜 그럴까?"

자타 공인, 인생 상담 고수 남편이 내 말을 듣자마자 답을 내놓는다.


"덜 놀아서 그래."

"뭐라고?"

고수의 답은 오늘도 내 뒤통수를 친다.


"덜 놀아서 그렇다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숙제 타령이야? 뇌가 굳어서 그러는 거야."

"뇌가 굳었다고?"

뇌 상태까지 들먹이니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그래. 새마을 정신이 뼛속까지 박혀있어서 그러니까 더 놀아야 치유가 돼."

진단은 기분 나쁘지만, 처방은 마음에 든다. 더 놀아야 한다니.


인생은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 재미와 의미. 의미만 찾다 보니, 재미 찾는 기능이 마비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넷플릭스 몇 시간 봤다고 뒤통수가 당긴다니…. 심각하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삶의 재미도 모르고 끝날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삶의 재미도 모르고 끝날까 봐. 시간 모두 지나고 나만 후회할까 봐.


일제시대, 6.25 다 겪으며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자수성가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새마을 정신의 화신이다. 부지런함은 기본이요, 전등 하나 켜놓는 것도, 천 원짜리 하나 밖으로 나가는 것도 손 벌벌 떨며 산다. 그분들에게 게으름은 입에 넣을 먹을 게 없다는 의미고,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고 두려움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내 뇌가 말랑거리긴 어려운 일이다.


'뇌딱딱병'을 치유하려면 어떻게 더 놀아야 하지?


1. 원 없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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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는 살 수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아, 미치겠습디다.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아버지 주머니에게 은화 한 닢을 꼬불쳐 시장에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지요. 도랑에 숨어,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부족하고 아쉬우니 갈망이 이는 거다. 15년 쉼 없이 일하는 동안, 원 없이 재밌는 걸 해본 기억이 없다. 버찌 먹는 셈 치고, 몇 날 며칠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노트북 끌어안고 살아보자. 그놈의 스토리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2.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한다.

'~해야 한다.'라는 책임과 의무감 없는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돈 버는 일은 잠시 안 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다~ 불러먹어!" 가족에게 소리쳐두고, 커튼을 친다. 글 쓰라고 사준 노트북 끌어안고 눈만 껌뻑인다. 다른 몸의 에너지는 최대한 보존하며, 넷플릭스 폐인이 된다.


당연 세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빗는다. 만보도 안 걷고, 부모님께 의무 전화도 안 건다. 댕댕이가 배고프다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면 이렇게 소리친다.

"엄마는 지금 뇌딱딱병에 걸려 치유 중이니, 네 밥은 언니한테 달라고 해!"


영국 드라마에 폭 빠졌다. 어쩌면 저렇게 수염이 덥수룩할까? 새까만 수염이 비현실적으로 목까지 내려온 영국 배우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스산하고 차가운 바람이 내 방까지 불어오고, 작은 영국 마을에 사건이 터진다.


NaverBlog_20160904_200239_01.jpg 영국 드라마 브로드처치

며칠 듣다 보니 특특 거리는 영국 발음이 멋지다. 저렇게 멋진 발음을 구사하며 영어를 내뱉고 싶은 욕심이 인다.


"하우드 아이 스뺀 더레스트 어브 마이 데이즈?" How do I spend the rest of my days?


원 없이 넷플릭스 보겠다 선언해놓고 어느새 한 달 결제 버튼 누르고 책상에 앉아 영어 공부를 한다. 더 놀아야 치유되는 '뇌딱딱 병'에 걸리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자기 계발 중이다.


미친다!!! 놀라니까. 덜 놀아서 그런다니까. 처방전도 소용없다.


"인간은 자기를 속이거나 확신하고, 자기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며, 자기를 받아들이거나 밀쳐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크리스 나이바우어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


넷플릭스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될걸. 뭐, 그걸 가지고 이렇게 또 썰을 풀고 앉아 나를 사랑했다 미워했다 혼자 난리를 피운다. 뇌딱딱 병에 걸렸다는 반증이다.


'그나저나 더 놀아야 하는데.... 뭘 하고 노나? 살아생전 뇌가 말랑해지는 경험을 해볼 수는 있으려나?'

입으로는 잘안되는 발음의 영어를 따라 뱉으며 딱딱한 뇌가 그런 걱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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