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유튜브와 엄마들 카페와 쇼핑 사이트를 드나들며 정보를 모은다. '수건'얘기다. 머리가 터지려 한다. 이번엔 기필코 수건, 수건을 사야 한다.
몇 년이 됐는지도 모르는 까칠한 수건으로 얼굴 긁어대기도 지쳤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 박힌 수건도 싫다. 우리 집 댕댕이 발수건인지 사람 얼굴 수건인지 구분 안 되는 당혹함도 싫다. 뜨내기 수건 나부랭이들은 모두 싹 쓸어 버리고, 나의 간택을 받은 놈들만 이쁘게 나란히 꽂아두고 살고 싶다.
"제~~ 발~~ 이~~ 제~~ 수~~ 건~~ 좀 사자!!!!!"
'책' 빼고 쇼핑은 다 싫어한다. 쇼핑 전에 '공부'를 너무 빡세게 하는 바람에 정작 쇼핑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다. 치약 하나 사려 해도 유튜브 영상을 다 찾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정보수집 몇 시간 만에 겨우 치약 몇 개를 추려내고도 마지막 결정을 미룬다. 아직 뭔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엄마~~~~ 치약 좀 사자!!!!"
딸내미가 치약을 한 방울까지 짜내며 소리친다.
"까뭉이꺼 우리가 좀 써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
치킨 맛 나는 댕댕이 치약에까지 눈독을 들인다. 동네 마트라도 가서 아무 치약이나 집어와 던져줘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결정을 잘 못한다. 손해 보는 결정을 할까 봐, 내가 한 결정을 후회할까 봐 매번 망설인다. 모든 정보가 다 내 손안에 다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못할 수밖에…. 비교해야 할 치약만 마켓 선반 한가득이다. 내 인생의 소중한 하루를 다 바쳐, 치약 성분과 맛과 향과 가격을 비교하고 앉아있다. 이 세상에 치약은 딱 한 종류면 좋겠다. 이러다 치약 대신 굵은소금 쓰자고 가족을 설득하고 있을지도….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내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봐. 손해보고 후회할까 봐.
그러니까, 내가 결정 잘한 거 맞지?
한동안은 티스푼이었다.
'티스푼을 사야 해. 가볍고, 심플한 것으로 10개.'
내 머릿속에서 미션이 떨어지자, 티스푼만 보였다. 필요와 기능, 세련됨과 단순함, 적당한 가격까지 욕심을 내니 살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을 티스푼만 보고 다니니 남편이 참다못해 이렇게 협박을 했다.
"이번에도 안 사면, 내가 그냥 아무거나 똑같은 것 10개 사서 꽂아놓는다???"
새 티스푼 10개를 못 사고 시간은 갔다. 내가 변했나 보다. 오합지졸 어중이떠중이 보잘것도 없는 티스푼들이 이뻐 보였다. 조화로워 보였다. 커피를 저을 때, 미숫가루를 탈 때, 홍삼을 탈 때, 요플레를 먹을 때, 모두 나름 쓸 데가 있었다.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서 티스푼들은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었다. 똑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새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똑같은 티스푼 10개를 꽂아둘 이유가 뭐지?
친정집에 다녀올 때 과일과 떡과 함께 우리 집으로 건너온 티스푼, 미국에서 헤엄쳐온 비늘 달린 물고기 티스푼, 무인양품에서 이 가격에 이걸 꼭 사야 하나 갈등하며 업어온 티스푼,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10여 년 밥을 퍼먹던 작은 스푼까지. 모두 거기 그렇게 자연스럽게 옹기종기 있어야 할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모여있었다.
우린 다 달라도 잘 살아!
"질서 정연한 숲은 일찍 죽는다."
-팀 하포드 <메시 Messy>
질서고 조화고 티스푼은 그렇다 치고 수건은 바꿔야 한다. 최선을 다해 정보를 수집하고, 40수, 코모사, 200g, 그레이 뽀송뽀송한 수건을 10장 주문했다. 3,945개의 리뷰가 달려있어 더욱 믿음이 갔다.
주문한 수건을 받아 첫 세탁을 마쳤다. 세제 없이, 울 모드로 단독 세탁해서 탁탁 털어 그늘에 말리기. 새 수건은 첫 세탁이 생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일하고 먹고사느라, 수건이라는 놈을 연구할 시간이 없긴 했다. 빨랫대에 걸려있는 10장의 두툼한 수건을 보니 널어둔 빨래처럼 마음이 개운하다. 오래된 먼지라도 털어낸 듯.
며칠 후, 딸내미가 세수를 하고 나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 새 수건 왜 그래?" "왜? 수건이 뭐?" "내 얼굴 좀 와서 봐봐."
자세히 들여다본 딸내미 얼굴에는 수건의 보풀이 양털처럼 잔뜩 붙어있었다.
난 그렇게 바라던 새 수건 10장을 사고도, 아직도 큰 글씨 박힌 까칠한 놈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