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너무 빡빡하게
말고, 대강 적당히

먹다만 소고기 환불하고 든 생각

by 글쓰는공여사

"이 소고기 환불해주세요!"

랩으로 꼭꼭 싼 소고기를 마트 고객 센터 직원에게 내민다.

"네!"

먹다만 소고기를 왜 환불하려는지 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쿨하게 카드를 취소하고 다시 결제를 한다.


'쉽게 환불 안 해주면 어쩌지? 매니저 나오라고 일단 소리치자. 그런 다음 휴대용 가스버너와 프라이팬을 구입해서 그 자리에서 소고기를 구워 매니저 입에 넣어주자.'


머릿속에 순서도까지 그려둔 시나리오 무색하게 일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 허탈하다. 뭐라도 환불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되려 내가 느낀다.


"너무 질겨서요. 여기서 같은 소고기 매번 사다 먹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씹히지도 않고. 국거리로 쓰긴엔 너무 아깝고."

내 넋두리가 길어진다.

"네."

직원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환불 지침을 따를 뿐, 내가 씹은 소고기가 얼마나 질긴지 관심이 없다.


난 뭐 하나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내가 손해 볼 짓은 눈곱만큼도 안 한다. 꼭 따지고 묻고 고치려 한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손해보고 있을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손해보고 있을까 봐. 그렇게 빡빡하게 살다 정작 난 행복하지 못할까 봐.

1586745050915.jpg 엄마! 난 질겨도 다 괜찮아요!!!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마냥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고 하지 못하고, '적당히'라는 단서를 붙입니다. 산술적으로 측량할 수는 없겠지만, 8분지 정도 건강하고 8분지 정도 행복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대신 나머지 2분지 정도는 몸이 좀 불편하기도, 마음에 고통으로 다가오는 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2분지 덕분에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또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

-원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먹다만 소고기를 환불한 게 정말 나에겐 이익이었을까?

1. 집착이 시작된다.

이걸 그냥 먹을까 말까? 질긴 소고기 씹어 넘기면서 갈등이 생긴다. 그냥 먹기에는 돈도 아깝고, 식사라고 양념 뿌려 준비한 내 시간과 노력도 아깝다. 마음의 집착이 시작되면 심적인 손상을 입는다.


2.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이딴 걸 고기라고 팔았다니? 못 참는다. 실상을 공개하고 소비자 권익을 찾아야 한다.'

주섬주섬 고기를 랩에 싸서 마트 갈 채비를 한다.


"아무리 질겨도 그냥 먹지, 뭘 먹다 남은 소고기를 바꿔달라고 하냐?"

남편은 날 외계인 보듯 했고, 딸내미는 "엄마! 파이팅!"을 외쳤다.


환불에도 어김없이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그 시간에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봉오리 활짝 핀 목련 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머릿속에 계산기가 부지런히 돌아간다.

rhendi-rukmana-H0lTOg1t_0o-unsplash.jpg 손해일까? 이익일까?

3.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다.

쿨한 직원의 반응에 내가 되려 당황하고 마음 추스리기 바쁘다. 환불받은 모양새가 시원찮다.


"우와~ 우리 엄마 대단하다! 먹다 남은 소고기를 다 환불받아오고."

칭찬인지 진기명기 감탄인지 딸내미 반응마저 헷갈린다.


난 결국 이익을 봤을까 손해를 봤을까? 그만한 돈 가치를 하는 상품을 소비한다는 '자본주의적 발상'으로는 이익인데, 거기에 쏟은 보이지 않은 자원, 시간, 노력, 에너지, 마음으로는 아무리 봐도 손해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만 고르려는 내 마음이 착각을 한 게 아닐까? '내가 옳다' 박박 우기며, 작은 정의라도 실현하는 것처럼 빡빡하게 사는 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일까?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고 싶다. 상위 1%로 건강하고 행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다 보니 버겁다. 그놈의 최선 좀 갖다 버리고 대강 적당히 좀 살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식자재를 인터넷으로 싸게 판다. 감자 10kg을 샀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감자 박스가 놓여있다. 감자 상태를 확인하러 박스를 여니, 흙 묻은 감자들이 한가득이다. 한 귀퉁이엔 감자와는 많이 다른 한 놈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사과다. '나도 함께 왔어요.' 수줍게 흙 묻은 얼굴을 내민다.

1586744266578.jpg 감자 박스 속에 묻어온 사과 한 알

감자 박스 속에 자기가 키운 사과 하나를 얹어 보낸 농부의 마음이 전해진다. 다소 무르고 다소 썩은 감자들이 있어도 감자를 사준 소비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걸까? '이 사과도 내가 키웠으니, 하나 잡셔보슈.'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넣어준 걸까? 어느 쪽이든 감자 박스 속에 발견한 사과 하나가 빡빡한 내 마음에 바람 한 점을 선사한다.


인생, 내 것은 내가 챙겨야 살아가는 각자도생의 길이라도, 감자 박스 속에 사과 하나를 넣어 보낼 수 있는 그런 여유, 내가 조금 손해 봐도, 어쩌다 가끔 질긴 소고기를 씹고, 싹 나고 군데군데 썩은 감자를 받아도 그럴 수 있다고,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 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너무 빡빡하게 행복하지 말고, 대강 적당히 행복하면서. 최선 같은 건 다하지 말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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