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악 까~악 까~악"
시커먼 까마귀가 소나무를 건너뛰며 날 쫓아온다. 울어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와 산책 중이었다. 아파트 경계와 도로 사이에 놓인 소나무 숲,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아 우린 자주 그곳으로 산책을 갔다. 나무가 울창하니 새들도 많다.
그런데 오늘은 참 이상하다. 왜 이렇게 날 쫓아오면서까지 까마귀가 울부짖는지.
"나, 아무 짓도 안 했다."
산책하다 산까치 공격을 받은 적이 있어 몸부터 움츠러든다. 분명 보호해야 할 뭔가 있나 보다. 알이거나 새끼 거나. 난 까뭉이를 재촉하며 그 소나무 숲을 허둥지둥 벗어났다. 이게 끝이었으면 말도 안 한다.
오후 늦게 까뭉이랑 소나무 숲으로 산책을 다녀온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까뭉이가 일 쳤다!"
"누구... 누구? 누구 물었어?"
말까지 더듬으며 사태 파악에 나선다.
"사람은 아니고."
"그럼, 뭐? 개? 남의 집 개?"
"아니. 까마귀 물었나 봐. 잘 못 걸어. 뒤뚱거려."
"뭐, 뭐라고? 까뭉이가 까마귀를 물었다고?"
상상도 못한 일을 전해 들으니 믿기질 않는다. 난 쓰레빠를 끌고 현장 확인을 나선다.
불안하다. 이유는?
불안하다. 내 새끼가 남의 집 새끼 다치게 했을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 새끼가 남의 집 새끼 다치게 했을까 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고 말하게 될까 봐.
' 잠깐 놀라서 못 날은 거겠지. 제발, 제발 날아가고 없어라.'
그런 내 염원과는 달리 내 눈에는 까마귀 새끼 한 마리가 들어온다. 두발로 종종거리며 날지 못한다. 이를 어쩌지?
그 불쌍한 까마귀를 보고 돌아오니 속이 뒤집어져 까뭉이 야단부터 치고 본다.
"이누무 새끼~~ 나는 까마귀를 뭐가 어쨌다고 문겨?"
높아진 목소리와 일그러진 표정에 겁보 쫄보 까뭉이는 숨을 죽인다.
까뭉이도 '동물'이라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자식 사고 치고 집에 들어온 가해자 엄마 마음이 된다. 피해자 부모에게 머리 조아리고 죄송하다 천 번 만 번 사죄하고, 물질적 심리적 배상, 보상하고, 내 자식 잘못 키웠다고 한동안 자책에 빠질... 근데, 가해자 내 새끼는 9kg, 4살 먹은 댕댕이고, 피해자 다른 집 새끼는 이름도 나이도 몸무게도 모르는 시커먼 까마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야단을 맞으니, 일단 볼 면목이 없는 것으로...경위야 어찌 됐건 치료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야생동물을 치료해준다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건다. 6시가 넘어선 지 전화를 안 받는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뭔가 아귀가 안 맞는다. 아무리 까뭉이가 날쌘돌이라 하더라고, 어떻게 날아가는 까마귀를 공격할 수가 있지? 까마귀가 땅에 앉았다한들 날개 있는 새가 개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고? 의문이 쌓인다.
우리는 해바라기씨, 아몬드를 챙겨 소나무 숲을 다시 찾는다. 아직도 날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깍깍거리는 불쌍한 새끼를 발견한다. 우리 머리 위에는 까마귀 두 마리가 시끄럽게 깍깍대며 비행을 한다. 그냥 깍깍대는 정도가 아니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기세다. 우리는 얼른 먹이를 흩뿌려놓고 멀리 서서 관찰한다. 어미 아비가 분명하다. 다친 까마귀 새끼 부모다. 그들은 다쳐서 날지 못하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고 오늘 아침에도 나를 쫒아오며 그렇게 울어댔던 거다.
그렇다면, 까뭉이는 날아가는 까마귀를 공격한 게 아니고, 이미 다쳐서 못 나는 새끼 까마귀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편이 급히 제지했다 하니, 2차 상처를 입혔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속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무 관계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들고 소나무 숲을 다녀온다. 남편이 다녀와서 '이제 다 나아서 날아갔나 봐. 없더라고.' 그렇게 말하길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까마귀 지능이 7살 아이만큼 높다는 정보를 접하니 죄책감마저 든다.
4일째 되는 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소나무 숲에 들렀다. 새끼 까마귀는 보이질 않고 부모 까마귀만 시끄럽게 하늘을 날고 있다. 남편이 새끼 까마귀를 찾아 숲에 들어간 사이, 내가 먼저 발견한다. 오 마이 갓! 숲에서 나와 인도의 아스팔트 위를 총총거리고 있다. 까닥하다가는 도로로 내려갈 판이다. 고속도로 진입로라 차가 얼마나 쌩쌩 달리는데... 저러다 차에 치인 까마귀 시체를 묻게 될까 봐 심장이 쿵쾅거린다.
며칠 동안 내 애간장을 녹인 고놈이다'급하면 통한다.' 했던가? 동물병원만 생각했던 내가 그 순간 어떻게 '야생동물구조'라는 검색을 하게 되었는지. 까마귀는 유해조류라 '구조'도 하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했었나 보다. 다행히 몇 번 통화 끝에 구조대와 연락이 닿았다. 까마귀를 지켜보다 구조대 차량을 안내했고, 별 무리 없이 새끼 까마귀는 케이지 속으로 들어가 차에 실렸다.
"저기 저 나무 위에 둥지 보이잖아요."
구조대 아저씨는 차도 한가운데 심어진 나무 위 둥지를 가리킨다.
"거기에 집 짓고 새끼 낳았네. 새끼가 숲에서 날기 연습하다가 다쳤구먼. "
날아가는 까마귀를 해쳤다는 누명을 까뭉이가 벗는 순간이다.
"여기 고양이들도 많아 하룻밤만 지나도 얘는 죽은 목숨이지.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새끼가 관여한 일이라, 저희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차마 그 말까지는 못 하고 침을 삼킨다.
"동물병원에서 치료받고 다 나으면 야생으로 돌려보내 줄 거예요. 걱정 마세요."
내 표정을 살피던 아저씨가 말을 보탠다.
새끼 실은 차가 떠나니, 그렇게 울어대던 부모 까마귀가 소리를 딱 멈춘다. 눈에 안보이니 동물적 감각으로 빠른 포기를 했나? 그래도 그 부모 마음이 안쓰러워 허공에 대고 말한다.
"걱정 마. 니 새끼 고쳐주려고 병원에 데려갔어. 나중에 다시 풀어준대."
난 아무래도 요 며칠 동안 내가 동물인지, 인간인지, 새끼인지 부모인지 뭐 그런 개념에 혼돈을 겪고 있는 듯하다.
출동한 야생동물 구조차량, 차 너머 소나무에 까마귀 둥지가 보인다까마귀를 구조차량에 실어 보내고 나니, 내 할 일을 다한 듯 마음이 가볍다.
"뉴욕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걸려 죽어가는데도 119가 안 왔다는데... 우리는 까마귀 다쳤다고 이렇게 빨리 구조대가 달려오고...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야."
우리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점심을 먹었다.
세상엔 멋모르고 하는 일이 참 많다.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이렇게 마음 불편하고 힘든 일인 줄 미리 알았다면, 난 딸내미를 낳을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어떻게 내가 책임지겠냐마는, 적어도 나에게 오는 생명은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온전히 살아가도록 해주고 싶다. 우리 딸내미든 까뭉이든 숲 속의 새끼 까마귀든.
불쌍한 까마귀 공격했다고 요 며칠 까뭉이에게 잔뜩 눈총 준 게 미안해, 돼지 귀때기 간식을 건네며 말한다.
"까뭉아. 미안타. 그래도 이제 나는 놈은 쳐다보지도 말자. 응?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까뭉이는 '뭔 개소리를 하나?' 그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득템한 돼지 귀때기를 열심히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