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이러다 손님 초대는 언제 하냐?
"야야~~까뭉아! 장난감 좀 늘어놓지 말아라~~~~ 이게 뭐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내가 잔소리부터 한다.
"컹컹! 컹컹!"
댕댕이는 외출하고 돌아온 우리를 보고 그저 기쁘기만 하다. 뱅뱅 돌고 짖으며 반갑다 인사를 한다.
"그니까. 그 집 갔다 오니까 우리 집이 좀 지저분하긴 하다."
다른 때 같으면, '댕댕이 사는 집이 다 그렇지~~ 어질어 놓고 사는 게 정상이야. 정상!"
되려 큰소리치며 기선을 제압했을 딸내미도, 이번엔 내 말에 수긍을 한다.
친구 집들이에 다녀오고 생긴 후유증이다. 친구는 집을 사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뜯어고치고 이사를 했다. 인테리어 잡지에 기고해도 좋을 만큼 사진발이 선다. 화장실 변기에도 빛이 난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딱 트인 전망은 이 집의 하이라이트다. 거실엔 널찍한 원목 탁자를 놓았다. 숟가락, 젓가락도 도자기 받침 위에 올려놓고, 정갈한 반찬을 이쁜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다음엔 우리 집에서 밥 먹자."
고맙다는 인사를 식사 초대로 대신한다.
깔끔한 집을 다녀오니 우리 집 묵은 때가 더 잘 보인다.
그 전에도 묵은 때는 있었다. 변기 뚜껑은 낡고 흠집이 잔뜩 나있었고, 창틀과 문틀에도 먼지는 가득 앉아있었다. 식탁 의자에는 퍼진 인절미처럼 방석이 축 늘어져 붙어있었고, 도마에도 감자 깎기에도 꼬질꼬질 묵은 때가 붙어있었다.
그전에는 다 안보였다.
몇 년 전, 믹서기가 작동을 안 했다. 고장 났나 싶어 서비스센터에 가지고 갔다. 놔두고 가라 하더니, 금방 찾으러 오라 한다. 고장 난 데가 없다 한다. 전문가 앞에 서니, 지 할 일이 그제사 생각났던지 믹서기는 작동을 했다. 뭐, 다행이다. 그런데 믹서기를 건네주던 수리 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좀 닦고 쓰시지..."
"?!?!?!"
그제야 믹서기에 줄렁줄렁 눌어붙은 때가 보였다. 아! 민망타. 꼭 누가 나에게 '팔꿈치 때 좀 밀고 다니시지...'라고 말하면 느꼈을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이다.
친구 집에 다녀오니 내 눈에 더러운 게 보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지 일주일 내내 남편과 나는 집안의 묵은 때를 밀고 닦는 데 집중했다.
변기 뚜껑도 이참에 새 걸로 바꿔 끼우고, 식탁의 낡은 방석도 주문을 넣었다. 창틀과 문틀에 먼지도 쓱쓱 보일 때마다 닦고, 감자 깎기의 묵은 때도 이쑤시개를 동원해 뜯어낸다. 냉장고에 쌓인 정체모를 까만 비닐봉지들의 비밀을 털고, 화장실 타일의 물때를 지운다. 구석의 곰팡이도 제거하고 싱크대 기름때도 닦는다. 휴~~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언제 이 묵은 때를 다 벗기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언제 이 묵은 때를 다 벗기냐? 그러다 짧은 인생 다 끝날까 봐.
묵은 때를 들여다보면 때가 낀 위치, 묵은 정도에 따라 필요한 도구가 다르다. 한번 시작한 '청소 욕구'는 엉뚱하게 '청소 도구 욕구'로 불이 옮겨 붙는다.
바로 이거다! 독일 브러시 전문 레데커(Redecker). 1935년에 시작해 3대째 브러시만 만든다. 비취목 나무 바디에 45가지 타입의 솔을 자랑한다. 85년 동안 브러시만 연구했으니 별놈의 브러시가 다 있다.
조개나 버섯을 세척할 때 쓰는 브러시, 신발이나 키보드, 블라인드를 터는 브러시, 고양이, 강아지 브러시도 있고, 심지어 브러시를 청소하는 브러시 클리너까지 따로 있다. 모양도 너무 이쁘다.
"남편! 나도 이쁜 독일 브러시 가지고 싶다."
"......"
때는 안 벗기고 브러시 타령만 하는 나를 보고 오늘도 남편은 말이 없다.
친구 집 한 번 다녀오고, 집안의 묵은 때를 한 큐에 벗기려니 더운 날씨에 힘만 든다. 그냥 설렁설렁 살아야겠다. 눈앞에 보이는 댕댕이 눈곱이나 떼주고, 쓰고 있는 안경알이나 반짝반짝 닦으면서...... 쪼금 집이 지저분하더라도 친구도 초대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