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분을 다듬으러 미용실에 간다

[불안의 진짜 이유] 마음에 쏙 맞는 헤어 디자이너를 만나면~

by 글쓰는공여사

"이젠 정말 못 참겠어!"

"갈라고?"

남편은 드디어 내가 결단을 내렸나 궁금해한다.

"응. 코로나고 뭐고 답답해 미치겠다. 별 게 다 나오는 세상인데, 왜 머리 컷 하는 자동 머신은 없는 거야? 원하는 머리 모양 고르고, 머리 쏙 집어넣고, 그러면 똑같이 잘라서 나오는 그런 기계? 이제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

미용실 가기 귀찮다고 머리 쥐어뜯으며 헛소리 빽빽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오늘도 할 말을 잃는다.


귀찮아도 3개월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갔다. 이번엔 7개월 만이다. 코로나 때문에 더 늘어졌다. 그동안 내 머리는 커트에서 단발로, 이젠 산발로 가닥을 잡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딸내미가 내 머릴 보며 묻는다.

"엄마! 밤새 뭔 일 있었어?"

"......"

거울 속의 내 머리는 산더미만큼 부풀고, 삐쭉삐쭉 잔가지까지 쳤다.

"그렇게 마음이 진정이 안되니?"

난 물 발라 꾹꾹 숨을 죽이며, 머리카락에게 말을 건다.

"넌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영화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물 떨어지는 수건에게 위로를 건네듯.


미용실 못 간 7개월 동안, 딸내미는 재밌다며(?) 내 머리카락으로 '미용실 놀이'를 했다. 나에게 분홍색 덮개를 씌우고 머리카락을 쑹덩쑹덩 자른 다음, 이쁘다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어 나쁘진 않지만 나의 헤어 디자이너 '루시쌤'이 그립기만 하다. 흑~


불안하다. 이유는?

불안하다. 미용실도 자주 못 가고 이게 뭔 꼴이야!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미용실도 자주 못 가고 이게 뭔 꼴이야! 이러다 나를 가꾸지도 않고 볼품없이 늙어가는 건 아닐까?

미용실에 쪼옴 가자!

'루시쌤'은 마트 2층 프랜차이즈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다. 운 좋게 맘에 쏙 드는 디자이너를 8년 전쯤 만났다. 그냥 '알아서 잘 잘라준다.' 미국에서 3년, 머리 자르는 비용 아낀다고 미용실에 발길을 딱 끊었더니, 머리엔 도통 관심이 없어졌다. 머리카락은 그냥 관상용, 보온용, 완충용 정도, '사람의 두피에서 자라는 털'이라 생각되니, 미용실 가기가 그리 귀찮을 수가 없다.


그래도 루시쌤에게 머리를 맡기면 기분이 늘 좋다. 그 이유는?

1. 내가 반년만에 가도 내 머리 스타일을 기억한다.

"앞머리 짧은 거 좋아하시잖아요. 조금 더 자를게요."

8년 동안 적어도 32번은 내 머리를 만졌으니 기억할만하다고? 쉽지 않은 일이다. 난 일주일에 2번, 3년을 만나 영어 가르쳤던 얘들도, 1년쯤 지나면 이름도 헷갈린다. 진찰 기록지에 세세한 고객 정보를 깨알같이 메모해두었다가, 다음 방문 때 아는 체한다는 동네 병원 마케팅도 아닐 테고. 매번 기억하는 게 놀랍다.

저, 앞머리 짧은 거 좋아해요!

2. 부드러운 터치로 머리를 만진다.

미용실 유목민일 때 갓 오픈한 미용실에 처음 갔다. 남자 미용사가 정성 들여, 아주 정성 들여 머리를 감겨줬다. 열정이 넘쳤던지 서비스로 두피 마사지까지 해줬다. 죽는 줄 알았다. 어찌나 악력이 센지, 머리 껍질을 해골과 분리시키는 건 아닌가 싶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고통을 참았다가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루시쌤은 부드럽게 머리를 감기고, 사사삭 머리를 자른다.


3. 나의 관심거리에 말을 섞는 노력을 한다.

"외국어 잘하면 정말 부럽던데 어떻게 해야 해요?"

내가 영어 학원 한다 하니 이런 오픈형 질문을 던진다. 구체적인 학습법에서부터 미국 헤어숍까지 내 말이 길어져도 맞장구쳐주며 잘 들어준다. 다음에 가면, 꼭 영어학원 그만뒀다는 얘기를 해줘야겠다!


4. 머리카락 칭찬을 한다.

"고객님 머리는 돈이 안 드는 복 많은 머리라니까요. 새치 하나 없고, 반곱슬에 모양 잡아놓으면 탁탁 털기만 해도 되고. "


그런 칭찬받기 민망하다. 난 내 머리카락에 한 일이 없다. 잘 안 빗고 잘 안 감는다.

"머리 감을 때 된 거 아냐?"

누군가 옆에서 얘기하면 그때사 머리를 감는다. 헤어 두피 관리법 그런 건 모른다. 컨디셔너도 안 쓰고 샴푸만 쓴다. 뭐가 좋은지 모르니 계속 바꿔가며 쓴다.


펌 안 한 지 20년 되었고, 염색은 해 본 적도 없다. 삶이 너무 지루하면 금발이나 빨간 머리 앤이 되어 주위 사람 충격 주려고 아직 안 해봤다. 한 달 후에 지구 멸망이 확실해지면 진중하게 고려는 해보련다. 그땐 내 머리 색깔 바꿔줄 미용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내 머리카락 건강 비결은 '무관심'인 것 같다. 미용실 망해 먹을 머리다.


5. 마지막 마무리 터치도 잊지 않는다.

자신이 한 커트가 마음에 드는지, 루시쌤은 거울 속의 날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러다 함께 온 딸내미에게 마지막 멘트를 날린다.


"네 엄마, 피비 캐츠 닮았지? 근데 피비 캐츠 누군지 알아?"

"아뇨."

딸내미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도 알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고맙다. 고객관리 차원이든 마케팅 일환이든, 오십 대 아줌마인 내가 피비 캐츠 닮았다는 말을 듣고 민망하게 배시시 웃을 곳이 여기 말고 어디 또 있겠는가?


난 머리 자르러 미용실에 가지 않고, 기분을 다듬으러 간다.


영화배우 피비 켓츠, 웃는 게 쬠 닮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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