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쓰던지, 주던지, 버리던지, 갖다팔던지.
"이번엔 뭐 올렸어?"
남편이 호기심에 묻는다.
"풍선 67개랑 컨버스 운동화."
"아무도 안사면 그냥 갖다 버려~"
뭘 팔아보겠다 매번 끙끙대는 내가 안쓰러운지 남편이 그리 말한다.
"음... 그래도 쫌 기다려보고."
요즘 '당근 마켓'에 중고 물건을 내다 판다. GPS로 현 위치와 동네를 인증하고 직거래하니 믿을 수 있고, 택배 보내는 번거로움이 없어 편하다.
집안에 사람 셋, 동물 하나, 생명체는 넷인데 물건은 수천가지다. 지향하는 삶은 미니멀리즘, 그런데 사는 모양새는 영 아니다. 남편이야 원래 정리엔 관심이 없다. 대학생 딸내미는 코딱지만한 물건도 다 끌어안고 살며 이리 말한다.
"엄마 나이는 되어야 비우고 버릴 게 생기지, 우린 쌓고 채우기도 바빠." 그것도 맞는 얘기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이 많은 물건들을 어쩐다?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이 많은 물건들을 어쩐다? 팔지도 버리지도 주지도 못하고, 계속 이고 지고 살까 봐.
집안 물건들을 하나씩 스캔해서 처리할 놈을 고른다. 물건들은 어떻게든 내 눈에 안 띄려고 구석에 처박혀 숨을 죽인다. 난 무자비하게 환한 거실로 끌고 나와, 과거 이력을 뒤지고 운명을 결정한다. 쓰던지, 주던지, 버리던지, 갖다 팔던지.
1. 쓰던지?
67개 남은 풍선, 내년 남편 생일 때 쓰려나? 난 입으로 부는 것도, '푸쉬푸쉬' 펌프로 바람 넣는 것도 다 질색이다. 터질까 무섭잖아. 그럼, 다른 사람 주자!
2. 주던지?
아랫집 꼬맹이 줄까? 근데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 이딴 거 줬다간 사이 틀어지기 십상이지! 그럼, 아파트 어린이집에 갖다줄까? 저번에 상처 받았던 거 생각 안 나? 딸내미 쓰던 멀쩡한 종이벽돌 세트 버리기 아깝다고 깨끗이 닦아 가져 갔더니.."우린 그런 것 필요 없어요." 매몰찬 선생님 반응에 민망해서 전부 갖다 버렸잖아. 그냥 버리자!
3. 버리던지?
근데 아직 바람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 이거 태우려면 유독가스 엄청날 텐데. 혹시 쓰레기 정리하는 곳에 살포시 갖다 놓으면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까? 아니야. 저번에 플라스틱 바구니 누가 쓸까 하고 올려놨다가, 경비아저씨 구시렁거리는 소리 들었잖아! 그럼 차라리 팔자!
'당근 마켓'에 1년 동안 굵직한 것-청소기, 미니 컴포넌트, 실내 자전거, 이동식 에어컨에서 소소한 것- 7단 서랍함, 직소퍼즐, 캘빈클라인 향수, 종이컵까지 차근차근 팔아해치웠다.
중고거래를 하다 보니 사람 마음이 요리도 간사한 줄 알겠다.
물건 내놓기 전에는 이렇게 헐값에 팔긴 너무 아깝다. 내가 이거 얼마 주고 샀는데... 그래도 팔아야지! 껴안고 계속 살 수는 없잖아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물건값을 아주 후려쳐서 내놓는다. 제값 받아 살림에 보태야지 하는 마음보다, 빨리 보내고 비우고 싶다.
매직폼까지 동원해 쓸고 닦고 사진 찍고, 상품 설명 자세히 올려놓고, 소식을 기다린다.
"당근"
"당근"
"당근"
물건 좋고 가격 좋으면 5분도 안되어 '당근'톡이 마구 띠리링 띠리링 울린다. 픽업도 빠르다. 그날 바로 픽업 와서 내 손에 돈 쪼금 쥐어주고 차에 싣고 사라진다. 속전속결이다. 그 돈 손에 쥐고 계단을 오르면 괜히 팔았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고, 에궁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받을걸? 하는 생각까지 올라온다.
어떤 물건은 하루가 지나도 선호 클릭 하나 없다. 그럴 땐 에궁 내가 너무 물건값을 높게 불렀나? 후려치고 또 후려친 숫자를 빤히 들여다본다.
마음이 간사하게 그네를 탄다. 아까워 팔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얼른 팔아해치우고 싶기도 하다. 주고 싶기도 하고, 끌어안고 천년만년 살고 싶기도 하다.
직소퍼즐 1,000개를 당근 마켓에 5천 원에 내놓았다. 미국에서도 품절된 제품이다. 동네 사람이 톡을 보냈다. 제천 사는 친구가 꼭 사고 싶다고. 귀찮았지만 택배비 5천 원을 더해 만 원에 팔기로 했다. 빨리 해치우고 싶기도 하고, 새주인 만나 퍼즐 조각이 그림 되면 좋겠다싶기도 해서.
퍼즐 잘 받았다는 감사 문자를 받고, 3일쯤 지나 뜨끔없이 그 분에게 문자가 또 왔다.
"어제 퍼즐 다 맞췄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할지ㅠ"
불길하다.
"퍼즐 조각 없는 건 아니죠?"
성급함에 일단 묻고 본다.
"아뇨! 퍼즐은 다 맞췄어요. 다른 퍼즐꺼가 여기 들어있었나봐요~ 우편으로 보내드릴까요?"
휴! 1,000조각 다 있다니 일단 다행이다.
"괜찮아요. 그 조각 잃어버린 줄 알고 갖다 버렸어요. 안보내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연락 주셔서."
"헐! 빨리 맞춰볼걸."
자기가 서둘러 퍼즐을 맞췄더라면, 내가 아까운 퍼즐 안 버렸을 거라 생각하는 그 마음, 고맙다.
그 말 한마디에
5,000원 받겠다고 퍼즐 1,000 조각 세고 앉아 있었던 것도,
퍼즐박스에 딱 맞춰 포장하려고 끙끙댄 것도,
더운 날 땀 삐질 흘리며 우체국까지 걸어간 것도,
일반우편 아닌 4,500원 등기속달로 보낸 것도,
모두 다 잘했다 싶었다.
난 아무래도 당분간 '당근' '당근' '당근' 울리는 톡 소리를 즐겁게 듣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