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만에 손님을 맞다 보니

딱 반만 할 걸 그랬다.

by 글쓰는공여사

"엄마! 월요일 2시 10분 기차 타고 내려갈 거야. 친구 데리고."

"그래. 알았어."


딸내미가 가족 단톡방에, 친구 데리고 와 하룻밤 자고 간다 공지를 띄웠다. 스케줄 맞춰봐야 한다더니. 날짜가 낙점됐다. 월요일이다!


손님을 맞아본지가 백 년은 된 듯하다. 먼 친정은 집에 잘 오지 않고, 가까운 시댁은 자고 갈 일이 없다. 집에 손님이 와서 자고 가는 건 꿈에 떡 본만큼 드문 일이다.


"너, 지금 뭐하냐?"

장롱에 이불처럼 생긴 놈은 다 끄집어내고 있는 날 보더니, 남편이 물었다.

"잠자리 시뮬레이션."

"뭘 한다고?"

"딸냄 친구 잠자리 미리 세팅해보고 있다고! 어떤 이불을 깔고, 어떤 이불을 덮을지."

"......"


최근에 오래되고 무거운 이불을 다 갖다 버렸다. 마음이 날아갈 것 같아 좋아했는데, 아직 가볍고 포근한 새 이불 사기 전이다.


...... 덮을 이불이 없다.


월요일 밤에는 영하 7도까지 떨어진다는데, 추우면 어떡하지? 일단 바닥에 두 개 깔고 그 위에 푹신한 요 깔고, 위에는 뭘 덮으라 하지? 이렇게 저렇게 세팅을 해본다. 춥다면 1인용 전기담요라도 깔아주자.

뭔 이불 가지고 저리 난리야? 아무거나 덮어!

"깔아 둔 이불은 다 어디 갔어?"

"다시 넣어 두었어. 장롱에."
"왜?"

"딸내미가 친구랑 자기 방문 딱 열었을 때, 바닥에 이불이 쭈르르 깔려있는 건 좀 아니지."

"그렇다고 그걸 다 다시 넣었어?"

"응"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에이. 그 정도는 해야지. 백 년 만에 집에 손님이 오는데. 고만한 나이 때는 집에 친구 데리고 오면 방이 좀 깔끔해야지 기분이 좋다고. 남편은 뭘 몰라. 뭘 몰라."

"......"


욕실도 낡은 칫솔 들고, 틈새 묵은 때까지 박박 문질러 닦는다. 변기 속도 구석구석. 휴지통도 안까지 쓱쓱 닦아 말려놓는다. 욕조 구멍 막고 있던 시커먼 머리카락도, 파래처럼 한 뭉텅이 걷어 올린다.


"휴우. 이 정도면 깨끗하지?"

스스로 검열관이 되어 욕실을 쭈우욱 둘러본다.


이제 냉장고다. 세 끼는 먹어야 하는데...... 감자 갈아 부침개도 하고, 닭볶음 할까? 아니면 돼지고추장볶음? 차려진 밥상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김치는 시원한 배추와 갓김치 내고 고기 볶고. 으흠, 밑반찬이 별로 없네.

chuttersnap-aEnH4hJ_Mrs-unsplash.jpg 이런 테이블 세팅을 상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스르륵스르륵"

잔멸치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뭐해?"

"아몬드 멸치볶음. 얘들 먹으라고."

"그냥 반찬 없으면, 불러줘. 족발이나 감자탕."

"그래도 집에 온 손님인데 한 끼는 집밥을 해줘야지. 남편은 얼른 나가 장 봐와. 귤 한 박스랑 요플레, 요구르트, 단팥과 야채 호빵도 사 오고. 얘들 밤에 먹고 놀라고."


이제 남편 인력까지 동원된다. 뭔 딸내미가 사귀는 남친을 데리고 온다는 것도 아니고, 백년손님 될 예비 사위를 데리고 온다는 것도 아닌데, 이 난리다. 이러다 손님용 침대도 새로 들이고, 살아있는 닭도 잡게 될까 심히 염려스럽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손님맞이가 좀 과한 건 아닌지.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손님맞이가 좀 과한 건 아닌지. 이러다 또 손님 온다면 설렘보다 귀찮아지는 건 아닐까?

kelly-jean-4ZeVqax_c94-unsplash.jpg 설레지만 과하지 않게.

딸 친구가 어찌나 수더분하게 잘 지냈는지, 헤어질 땐 아쉬워 덥석 포옹까지 했다.

"뭔 포옹까지나……."

딸내미가 과하다고 눈으로 엄마를 흘긴다.


남편은 내가 딸내미에 관한 고민을 얘기하면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네가 하려고 하는 것 딱 반만 해. 그러면 적절할 거야."


과하기도 했지만 백 년 만에 맞는 손님맞이가 설레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남편 조언대로 딱 반만 할 걸 그랬다. 이렇게 말이다.


"왔니? 네가 OO구나.

밥 먹자! 있는 거 다 꺼내서. 여기 네 숟가락!

추우니까 장롱에서 이불 다 꺼내다 덮어. 잘 자!"


휴! 손님이 좀 흔했으면 좋겠다.

나의 손님맞이가 너무 과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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