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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Dec 12. 2021

이사하는 날, 이삿짐센터가
안 나타나면 생기는 일

1탄

어쩌다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전세로 살던 집의 주인이 집을 판다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사를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살던 집이 너무도 쉽게 나갔다.


동네 아파트를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새 아파트는 차고 넘치는데, 같은 돈으로 들어갈 아파트 전세는 없었다. 4년 동안 이 지방 도시에도 전셋값이 치솟고 있었다.


산책길에서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파트 알아봐야 하나?"

"전세가 거의 없던데······. 같은 돈으로 가기는 힘들 것 같고."

"그럼 월세로? 월세는 너무 돈 아깝지 않아? 매달 갖다 바치는 건데······."

"그건······그래."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며칠 후,  또 산책길에서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부부의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꼭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없지."


하나 있는 딸내미 서울로 대학 보내고, 그동안 출퇴근했던 일도 모두 정리했으니.


"이젠 여기 좀 지겹지 않나? 더 먹고 싶은 데도 없고, 더 가보고 싶은 데도 없고."

"······그건 그래."


왜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육지가 아닌 저기 저 멀리  아주 지도 끝에 붙어있는 커다란 남쪽 섬이 생각났을까?


"우리, 제주도로 이사 갈까?"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제. 주. 도?"


제주도에 둥지를 틀자고? 벼랑 끝  저 새처럼?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가본 적 없었던 그곳. 넘실거리는 절벽의 파도와 바람에 휘날리는 야자수, 청명한 하늘과 구멍이 숭숭 뚫린 돌하르방이 손짓하고, 할머니 해녀들이 까만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따고 문어를 잡아 올리는 곳.


제주.


"응. 어차피 여기서 월세 바치고 있을 바에야, 먹고 싶은 데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은 제주도에서 월세 내면 좀  덜 억울하지 않을까?"

"······그건 그래."


남들은 아주 거창한 이유를 달고, 한 달 살이를 하고 일 년 살이를 한다는데······. 남편은 나의 말에 '그건 그래.'라고 말했고, 몇 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린 너무도 쉽게 제주도행을 결정했다. 여행이 아니었다. 이주였다.

나, 이사가. 어디로? 제주도. 그렇게나 멀리? 응. 왜? 그냥..... 여기도 좋은데, 도토리도 많고.

눈이 시뻘게져서 밤새 오일장신문과 제주도 카페를 들락거리며 연세 아파트를 찾았다.


[마당 있는 주택, 강아지 가능한 곳, 연세 1500 이하, 따뜻한 서남쪽.]


조건은 달랑 4개였는데, 그게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인지 곧 알게 되었다. 연세가 거의 없었다. 거기에 주택 연세는 씨가 말라있었다. 집이 마음에 들면, 강아지는 안된다고 막판에 계약을 틀었다.


제주 바람만 잔뜩 들었는데, 이사 갈 집은 없고. 이러다 다시 동네 아파트에 주저앉게 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그렇게 코빠뜨리고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주택 하나. 강아지도 된다 하니, 두말없이 가계약을 하고 낚아챘다. 말 그대로 낚아챘다. 다음날 우리가 계약 취소하면 당장 도장 들고  달려와 계약하겠다는 사람들 줄이 12명은 섰으니. 



있는 짐을 거의 다 버렸다. 장롱, 침대, 소파, 냉장고, 오븐, 책상, 책장 3개. 30년 살림살이가 5톤 하나에 들어갈 만큼 다 갖다 버렸다. 이사 가야 할 집이 너무 좁았으니까, 매일 '당근'에 물건을 올렸다. 웬만하면 싸게 처분하고 무료로 안겨줬다.


이사 가기 한 달 전쯤, 이삿짐센터를 예약했다.


세 군데 견적을 넣었다.  그중 한 곳에서 실장님이라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견적을 내러 왔다. 그분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에게 말했다.


"믿고 맡겨주세요. 우리 이삿짐센터 남자들, 힘 엄청 세요. 일 진짜 잘해요."


상상력이 너무 쓸데없이 풍부해서 탈이다. 탄탄한 가슴과 초콜릿 복근에 '왕'자 새겨진 근육질 남자들이 윗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짐을 번쩍번쩍 들어 던지는 상상을……?


이삿짐센터 남자들 힘센 거야 너무 당연한 건데, 난 그 아주머니의 말에 혹해 덜컥 그곳과의 계약을 남편에게 제안했다.


"힘이 세대잖아. 그리고 제주까지 따라온대."

"제주까지? 그거 괜찮네."


난 '남자들 힘이 세대잖아'에 넘어갔고,

남편은 '제주까지 따라온다'에 넘어갔다.


우리는 그곳과 덜컥 계약을 했다. 


15년 넘게 살았던 곳,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은 지인들을 모두 뒤로 하고, 뜬금없이 제주행을 결정한 우리.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아쉬움도 섭섭함도, 너무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나, 모르는 세상에 대한 불안도 갑자기 몰려왔다.


남편과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드디어 내일이네."

"그러네."

"이삿짐센터 컨펌했지?"

내가 남편과 맥주잔을 부딪히며 물었다.

"응. 내일 7시."

"그래, 그럼 됐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뭐, 최악의 경우라 해봤자, 약속한 시간에 안 나타나는 것 말고 뭐가 있겠어?"

"그럴 리가 없지."

"그건 그래."


입이 방정이다. 아니다, 입이 방정이 아니라, 난 동네 점쟁이 말대로 앞날에 대한 '예지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입에서 그냥 그런 말이 흘러나올 리가······?


다음날,


우리가 계약했던 이삿짐센터는, 내가 입으로 뿌린 방정맞은 말이 씨앗이 되어, 7시가 되어도 8시가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7시 10분.

"좀 늦나 보네. 차가 막히나?"

7시 20분.

"왜 안 오지? 전화해봐."

-뚜 우우, 뚜 우우, 뚜 우우.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질 않았다.

7시 30분.

"아, 이거 뭐야?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니야? 사무실로 전화해봐."

-뚜 우우, 뚜 우우, 뚜 우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삿짐센터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너무 할 말이 많아 그다음 얘기는 곧이어 2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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