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징비록><이순신의 바다>를 읽고,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 떠난 꼬꼬행 5탄 독서 여행.
엥? 탑승이 끝났다고라?
제주에서 청주 가는 8시 40분 출발 비행기. 근데 공항버스는 8시 28분에 날 공항에 내려줬다. 앞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뒤에 대기하던 버스가 부리나케 달려온 게 이거란다.
... 환장할 노릇이다.
배낭 붙들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했더니 버스 기사가 말했다.
"말을 해야지, 말을! 바쁘다고!"
"그럼, 빨리 갈 수 있나요?"
"어떻게든 빨리 가주지. 얼른 공항에 전화해요! 지금 가고 있다고."
"...?"
난 공항에 내리자마자 뛴다. 뛰고 뛰고 "죄송합니다. 비행기 때문에." 헤치고 헤치며 나간다. 근데 하필 입구에서 제일 먼 1번 게이트. 비행기 놓치지 않으려다, 하나밖에 없는 심장 터질 지경이다. 주황색 띠가 쳐진 게이트 너머에서 직원이 평온한 목소리로 청천벽력 같은 소릴한다.
"손님, 탑승 끝났습니다!"
바로 이 비행기다!
일단 사정을 해본다.
"안 돼요. 저, 청주 가야 해요! 청주 가야 한다고요! 제발, 제발 저 좀 태워주세요!"
살만큼 살고, 세상물정 알만큼 아는 50대 아주머니가 유치원생처럼 떼를 쓴다. 나 좀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내 표정이 아마... 으쌰으쌰 2박 3일 신나게 놀러 가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라 판단했던지, 이 비행기를 놓치면 부모님 마지막 가는 길 지켜드리지 못할 불효녀처럼 보였던지... 그들은 쳐놓은 주황색 띠를 풀고 날 안으로 들여보낸다.
혼자 달랑 주차되어 있던 버스를 타고, 제일 마지막으로 비행기 문을 닫고 들어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민폐녀 최강 등극이다. 그래도 청주 공항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멤버들을 생각하니 철없이 심장이 또 두근댄다.
후유.
엥? 이게 아귀찜이라고라?
멤버들과 아산 현충사를 둘러보고 삼계탕을 먹으며, 주차 위반 티켓도 하나 끊고 부족한 세금도 보태준다. 은행잎 가득한 민속마을에 들러 사진도 박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목포.
외암민속마을, 떨어진 은행잎이 참...
목포에 왔으니 탕탕 낙지 먹고 싶다는 멤버의 말도, 무슨 명량대첩이니 한산대첩이니 하는 거한 한정식 먹자는 멤버의 말도 무시하고, 뭔 귀에 헛것이 들었나 내가 우겨서 간 아귀찜.
콩나물만 그득한 순살 아귀찜.
근데 망했다! 허여멀건 게, 다른 해산물 하나 없고 콩나물 위에 아구만 달랑. 그것도 순살 아구라니. 맛은 밍밍하고.
난 그 식사 이후뭐 먹을래요? 하는 멤버들의 질문에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는데... 반대로 했더니 이 모양이다.
엥? 바다는 어딨다고라?
"여기, 바다뷰 정말 멋있지 않아요?"
멤버가 내민 핸드폰의 호텔 바다뷰는 정말 멋있었다. 근데 호텔에 들어 촥, 커튼을 걷자 눈앞에 떡허니 펼쳐진 뷰는....?
콘크리트 외벽 뷰?
아, 이쪽이 아닌가?
다른 쪽 커튼을 쫙 걷자. 길에 잔뜩 쌓인 거리의 어지러운 쓰레기 뷰.
난 못 참는다.
프런트에 따져 물으러 씩씩대며 내려갔다.
눈매가 호리호리한, 왠지 목포 조폭과 진하게 연을 맺고 있을 것 같은 인상의 남자가 날 째려보는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었다.
"저희 룸, 다른 호텔 벽밖에 안 보이던데..."
"긍께, 더 좋은 뷰로 달라 안 했소?"
"지금 주신 게 좋은 뷰예요? 저희 객실 배정할 때 여기 방, 몇 개 남아있었는데요?
"... 두 개요."
"그럼 지금 저희 방 두 개 주신 거밖에 안 남았었다는 얘기잖아요."
"..."
따져 물으면 뭐 하리? 좋은 뷰로 주겠다 했으니, 좋은 뷰 준거라는데...
벽 뷰와 쓰레기 뷰 호텔
띵.
사기다. 그래도 우리 멤버들은 나도 모르게 어디서 몸에 사리가 나올 만큼 도를 닦았는지, 뭐 아무렇지도 않다. 벽 뷰에 쓰레기 뷰에 바닥에 이불 깔고 자도 좋단다. 나이는 내가 젤 많은데, 인내심은 내가 젤 적다.
호텔 앞, 저녁산책마저 어지럽다. 길거리로 흘러나온 나이트클럽 음악은 요란하고, 차에서 색소폰은 왜 그렇게 구슬프게 불어대는지, 게다가 도로에 철퍼덕 자리 깔고 앉은 아주머니들은 노상수다를 술잔을 기울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고.
... 목포는 아무래도 이상한 도시다. '목포의 눈물' 흘리기 전에 우리는 얼른 여수로 향한다.
엥? 게장을 안 먹는다고라?
여수에 오니 여행분위기는 반전이다. "여수 밤바다..."그 소절밖에 모르는 노래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웃음에 취하고 수다에 취하고 음식에 취한다.
게장 정식 한상.
한상 가득 차려져 나온 게장을, 나를 포함 멤버 2명이 안 먹는다 하자, 다른 두 명의 얼굴에 이제껏 본 적 없는 환한 웃음이 싱그럽게 피어난다. 대신 난 나의 최애 음식 '갓김치'를 뱃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나중에 생각날 때마다 되새김질이라도 하려는 듯.
두 번째 잡은 풀 딸린 호사스러운 숙소. 풀장 앞에서 맥주 한잔 기울이는데, 우두둑 쏟아지는 비에 우린 후다닥 숙소계단을 뛰어오른다. 난 맥주잔과 먹던 치즈를 손에 꽉 들고뛰고. 그 와중에 직업정신 투철한 119 대원은 끝까지 남아 안전하게 음식을 대피시킨다.
우리의 싱그러운 웃음이, 후드득 풀장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물 위로 와르르 쏟아져내린다.
엥? 해설사들은 다 어디 갔다고라?
이번 여행은 이상하다. 청주, 아산, 목포, 여수, 통영, 부산까지 찍었지만, 해설사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전국 해설사 파업 중인지 휴가 중인지 머리카락 보일라 모두 꼭꼭 숨었다.
그동안 여행들도 모두 주말이었는데, 강진, 당진, 안동, 제주해설사들은 어디 숨어있다 '걸렸다!' 기쁨의 눈을 반짝이며 우릴 금세라도 잡아먹을 듯 반겼고, 우리의 해박한(?) 지식에 잔뜩 물이 올라 1시간은 기본 해설에 뱃가죽이 달라붙어서야 우릴 놓아줬는데...
이상하다. 이순신 3대 대첩을 모두 찾아가서, 헤이, 우리 왔어요. 이순신 궁금해하는 우리 독서모임. 지적 호기심 뿜뿜 뿜어대는 멤버들 등장이요. 어서 나와서 목마른 우리에게 지식의 시원한 샘물을 퍼올려주시오, 하는데도... 응답이 없다.
대관절 어디 숨은 거야? 맨날 끈질기게 끝까지 아는 지식을 모두 털털 털어냈던 해설사들이 이번 여행에서는 그립기까지 했다.
서울에 살 때 가끔 올려다봤던 광화문 사거리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 어떤 정치적인 의미로 세워졌을 수도 역사적인 고증이 부족한 동상이라 해도, 왜 그 자리에 그 동상이 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난중일기>니 <징비록>이니 책 이름은 무던히 들어봤지만, 읽어볼 시간도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책을 찾아 읽고 그의 흔적을 찾아다녀보니, 이건 알겠다.
나에게 없는 것.
하지만 가장 갖고 싶은 것,
'용기'.
그걸 죽는 순간까지 그는 가지고 있었다니. 이순신은 대단한 인물이다.
엥? 5번 하고 나니 어느새 끝나버린 여행이지만, 여전히 뭔가를 알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느끼고 싶어 하는, 호기심 가득한 멤버들과 이 지구상에서 보내는 소중한 2박 3일을 함께 해서 참 좋다.
아마 다음에 광화문에 서있는 이순신을 보면,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