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 바지 지퍼를 언제 내려도 되는지, 누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측은지심이 생기려는 마음을, 그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 불쾌감이 누른다.
산책로에서 엉덩이 까고 앉아 일 보는 할머니는 본 적이 없는데 할아버지들은 왜 그럴까? 산책로에 나가면 수시로 그런 할아버지들을 목격하니, 이제 운동화 끈을 조이면서 불안이 스멀스멀 인다.
불안하다.
왜?
불안하다. 아무 데서나 지퍼 여는 할아버지 또 만날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를 대봐.
불안하다. 아무 데서나 지퍼 여는 할아버지 또 만날까 봐. 못 볼 거 보고 뇌에 선명한 해상도로 새겨질까 봐.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산책로에서 지퍼 여는 할아버지들 너무 싫다 넋두리를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언니는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뉴욕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 거 알지? 어제는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 웬 엄청난 거구의 흑인 여자가 걸어오는 거야.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원피스를 팔랑팔랑 흔들면서 말이야. 그러더니 갑자기 멈춰 서서, 얼굴에 잔뜩 힘을 한 번 주더라고. 어디 아프나 싶었지. 그런데 치마 밑으로 뭐가 쏙 빠져나오는 거야. 그게 뭔지 알아? 바로 그 여자 똥이었어.
뉴욕 맨하탄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던 말이 똥구멍에서 똥을 뿌지직 바닥에 떨어뜨리듯 그렇게 덩어리를 뽑아냈다니까. 팬티도 입지 않는 아랫도리 밑으로 말이야. 상상할 수 있어?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스런 얼굴로 걸어 가더라니까. 난 그런 데서 살아."
동생 얘기를 들으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뉴욕의 맨해튼 여자는 치마 밑으로 똥을 말처럼 떨어뜨리고, 한국 중소도시에 사는 늙은 할아버지는 아무데서나 바지 지퍼를 열고 오줌을 눈다.
말 탄 런던 근위병이 지나간 자리
그런 이상한 인간들을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누굴 만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누굴 만나지 않는 것은 내 통제 밖이다. 그냥 그런 인간들을 만나면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기운이 없었으면….’하는 마음이라도 들게 측은지심을 길러 둘까? 아니면 이참에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해 불안을 없애볼까?
1. 선명한 화질의 영상을 찍는다.
2. 112에 전화를 걸어 관할 지구대 경찰관 출동을 요구한다.
3. 경범죄 처벌법 제3조 1항 12호에 의거 노상 방뇨 범칙금 5만 원을 부과하여 재발을 방지한다.
절차를 생각만 해도 마음의 균형이 깨진다. 이번 불안은 청양고추를 입에 물어도, 미키 쓰레빠 신고 뛰어도, 나무를 껴안아도 해결이 안 될 성싶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