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뭉이 나이가 왜 그리 중요한지 질문의 앞뒤 맥락을 모르니, 일단 침부터 목구멍으로 삼켜 보낸다.
까뭉이도 나이를 안 먹었으면, 한 살이라도 어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는지, 남편이 5살이라고 우기는 게 싫다.
까뭉인 4살 하고 32일 됐다. 남편!
남편이 까뭉이 나이를 앞뒤 꼬리 잘라먹고 물어본 이유는 점심을 먹으면서 밝혀졌다.
“과학자들이 개 나이를 사람 나이로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발견했대. 유전자로. 공식에 따르면…. 놀라지 마.”
놀랄 얘기를 하면서 놀라지 말라는 건 또 뭔가. 놀랄 준비를 한다.
“까뭉이는 사람 나이로 53살이래.”
딸내미와 나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눈동자를 키운다.
“뭐, 뭐라고? 까뭉이가 53살이라고? 까뭉이 이제 4살이야.”
딸내미가 일단 우긴다.
“뭔 까뭉이가 53살이라고? 말도 안 돼.”
나도 우기고 본다. 식탁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까뭉이를 들여다본다. 개들은 급속하게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든 상태로 오랫동안 산다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산책할 때 보면, 엉덩이와 종아리 근육이 얼마나 탄탄하고 실룩거리는데…. 기운은 또 어찌나 센지 목줄 잡고 있던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뼈까지 부러지게 만들었는데…. 뭔 53살?
‘까뭉이가 4살이니 곱하기 7 해서, 사람 나이로 28살이군, 넌 아직 건강해, 팔팔해, 청춘을 누려.’라고 생각했는데 53살이라니, 잃어버린 25년 까뭉이 청춘은 어디 갔나? 그 사이에 감방이라도 갔다 왔나? 하룻밤 사이에 까뭉이는 25년이 흐르고 억울하게 오십대다.
뭐? 내가 53살이라고? 난 억울하다
53살이라 생각하고 쳐다보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심의 징후가 곳곳에 포착된다. 요즘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따뜻한 이불에 쳐 박혀 몇 시간이고 꿈쩍 안 한다. 작년엔 영하 20도에 옷도 안 입고 산책을 다녔는데, 며칠 전 언니 수능 끝나기 기다리면서 교문 앞 찬 바닥에 30분 앉아있었다고 밤에 재채기를 한다.
남편은 뭐하게 쓰잘데기 없이 그런 얘기를 과학지에서 주워 와서, 우리 마음을 이리 심난하게 만드나?
그놈의 ‘나이’는 인간이나 동물에게나 참 예민한 문제다.
불안하다.왜?
불안하다. 나이 많이 먹을까 봐.벌써 많이 먹었다.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나이 많이 먹을까 봐. 그래서 늙고 병들어 곰방 죽을까 봐.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난 사랑스럽려고 몰락하고 싶진 않다.
독서모임을 한다. 나이, 성별 제한 없이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가입했다. 고등학생 딸내미가 있다 하니, 사십대라 추측했나 보다. 추가 멤버 모집 글을 이렇게 올린다.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다양한 멤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참, 이제 와서 오십대라 정정하기도 힘들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 나이를 솔직하게 얘기하면, 나이에 걸맞은 편견을 독서모임 멤버들이 가질까 두려웠다.‘나이는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았을 때에만 그 숫자만큼의 나이를 먹는다.’
우리는 독서 모임 중이라니까
나이가 들통났다. 내 나이를 알고 있던 지인이, 독서모임 멤버가 있는 자리에게 우연찮게 ‘생년’을 발설하고 말았다.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커밍아웃하듯 발표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누가 하루를 24시간으로, 일주일을 월화수목금토일로, 일 년을 365일이라 하고, 1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 하고, 그 나이를 세고 있냐? 나이 세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좀 살자. 우리 까뭉이도 53살 아니야. 뭔 53살이야? 4살이지. 4살 하고 32일 되었다니까.
난 60 넘고 70 넘어도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으면 나이 모르고 살 거다. 60에도 70에도 나이에 걸맞게 살 자신도, 능력도 없으니까. 나에게 절대 절대 나이 같은 건 묻지 마. 나이 말고, 요즘 어떤 책 읽는지,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 그런 거 물어보면 아주 길게 대답해줄게. 나이는 제발 좀 묻지 마. 개 나이든 사람 나이든 모르고 살다 죽게.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