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나도 오늘부터 출간 작가

여러분은 새해에 어떻게 불리고 싶나요?

by 글쓰는공여사

“돼지야~”

“돼지, 저녁 먹었니?”

“돼지, 학교 잘 갔다 왔어?”

남편은 이름 바꿔 부르기 선수인데, 딸내미를 ‘돼지’라 부른다. 적정 몸무게를 유지하는 딸내미를 귀엽다고 ‘돼지’라 부르니, 우리는 돼지 3마리와 댕댕이 1마리가 사는 동물가족이 된다. ‘말이 씨가 된다.’고 언제부턴가 딸내미의 식탐이 조금씩 늘고, 볼에 살이 붙고 허리 윤곽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의 이유는?

불안하다. 말이 씨 될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말이 씨 될까 봐. 안 좋은 일이 그대로 일어날까 봐.

딸내미가 돼지라니.

“딸내미한테 돼지가 뭐냐? 돼지가? 더 진취적이고 멋진 호칭으로 바꿔줘.”

내 말에 남편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외친다.

“그럼, 김 대표!


딸내미는 이제 '돼지'에서 '김 대표'로 종이 승격되고, 인간 중에서도 대표가 되었다. 반대표 과대표 회사 대표 나라 대표….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말에 파동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자기 충족 예언’(Self-fulfillment prophecy)이 실행되었는지 혹은 우주의 비밀스러운 기운을 받았는지, 호칭을 바꾼 지 일주일 만에 일이 벌어졌다. 딸내미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강원도 청소년 교육의회 대표됐어.”

“어헝? 어떻게?”

“내가 한다고 나서고, 대표 연설해서 뽑혔지.”

목소리에 뿌듯함이 잔뜩 묻어난다.


우리가 ‘대표’라고 부른 지 며칠 안 돼, 딸내미는 정말 ‘대표’가 되었다. 딸내미는 이후에도 교육감과 개인 면담, TV 인터뷰까지 눈부신 '대표' 활동을 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반전을 목격하고, 다시는 딸내미를 동물로 부르지 않았다.


이번 여름, 남편이 글 쓰겠다 끄적거리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다, 나를 ‘작가’라 불렀다. ‘작가’라 불리니, 나도 스티븐 킹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오전에 ‘집필 시간’을 갖는다.


“이번 주 금요일 오전에 볼까?”

친구가 전화로 묻는다.

“오전에는 안 되는데….”

“왜? 무슨 약속 있어?”

“응. 나 오전에는 글 써야 해.”

"…."


왜냐하면, 난 ‘작가’니까.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얼마나 멋진 호칭인가? 그렇게 몇 달 끄적거리다, 용기 내어 브런치에 응모하고 진짜 ‘작가’가 되었다. 나를 어떻게 불러주는가는 이렇게 무섭다. 나를 ‘작가’라 불러주는 댓글이 달리고, 브런치 팀에서도 나를 ‘작가’라 불렀다. 정말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브런치라는 개미지옥에 들어와 보니, 여기에도 작가, 출간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계층이 엄연히 존재한다. '작가'는 글만 쓰고, '출간 작가'는 강연과 인터뷰도 하고 홍보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더 자주 더 많이 하고, 돈도 더 많이 번다. 나도 작가 타이틀 앞에 뭐라도 붙이고 싶다.


12월 30일 올해를 달랑 하루 남겨두고, 올해 한 해 아쉬웠던 일을 꺼내보고, 새해 결심을 뒤적이고 있는데,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발표가 떴다. 나도 10월에 브런치에 입성하고 부랴부랴 쓴 글을 모아 브런치 북을 2권 만들어 올렸었다. 떨어졌다. 당연히 글쓰기 초보 딱지도 떼지 못한 내가 당선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싸하다.


싸한 마음을 모과차로 달래는데, 책꽂이에서 뭔가 나에게 자꾸 ‘러브콜’을 친다. “인생, 사랑이 아니면 못할 짓”이라는 책이다. 누구 책이냐고? 2019년 12월 20일 초판 1쇄 , 한국도서관협회 발행, 바로 내 책이다.

세상에서 단 3권 발행한 내가 쓴 책이다

시립도서관에서 진행한 12주 인생 글쓰기 수업에 참가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출판사에서 받은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하는 중년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는 도서관 무료 프로젝트다. 나도 내 책을 3권 받았다.


출간: 서적이나 회화 따위를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음.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종이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나도 이제 출간 작가다.


남편이 작가라면 무릇 글 쓰는 노트북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360도 회전하는 최신 노트북을 선물로 내밀었다.

그런 남편이 내가 브런치 북 수상 대회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치기 전 나물처럼 풀이 죽은 마누라 앞에서 브런치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

“야~~ 브런치, 글쓰는공여사 당선 안 시킨 건 그건 당신 생각이고, 우리 공여사는 벌써 책 3권 찍은 출간 작가야.”


남편의 허풍이 나를 아무래도 진짜 출간 작가로 만들 것 같다.

“그렇게 부르면 정말 그렇게 된다.”

딸내미도 나를 '멋쟁이 작가 엄마'라 부르니.
여러분은 새해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나요?
이루고 싶은 것을 호칭에 붙여서 나를 가족을 친구를 그렇게 불러주세요. 입으로 단어가 튀어나오고, 그 소리가 내 귀를 통해 전해지고, 나의 뇌세포와 지도를 바꾸고, 내 마음을 바꾸고, 내 행동을 바꾸고 난 정말 그렇게 불리는 대로 된답니다. 연말에 사기 치지 말라고요? 안 해봤으면, 해보고 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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