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임 소재
“언니, 고기를 볶은 다음에, 미역을 넣고 볶다가 물을 넣어 끓이면 더 맛있어.”
“아, 네….”
내가 미역국 끓이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시누이가 한마디 했다. 신혼 초였다. 요리도 서툴고,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몰려오는 것도, 내가 상을 차려내야 하는 것도 모두 부담일 때였다. 그들은 ‘시’ 자 붙은 사람들이니까.
미역국을 더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뿐인데, 그게 시누이 입에서 나오니, 그때는 마음이 소심하게 쪼그라들어, 내가 요리 못한다고 지적질하는구나 싶었다. 결혼 30년을 코앞에 둔 지금도 미역국을 끓일 때 가끔 그 말이 생각난다.
불안하다. 불안의 이유는?
불안하다. 못 한다 부족하다, 나에게 지적질할 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못 한다 부족하다, 나에게 지적질할 까 봐.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려 내가 없을까 봐.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고, 그 대답에 근거해 행동을 수정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무리를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의 뇌에는 아직도 새겨져 있어, 여전히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즐기고 그런 행동을 계속한다. 내가 머리 산발하고 눈곱도 안 떼고, 무릎 나온 추리닝 입고 마트에 가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무리가 원하는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이 충돌할 때 뇌는 피곤해진다. 대학과 취업, 결혼과 아이의 수순을 밟아야 무리에서 살아남는다 믿는 족속들은, 아직 그 수순을 밟지 않는 인간들에게 집요하게 인생 계획을 묻고,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지, 대학 가야지, 취직해야지, 결혼해야지. 애도 빨리 낳아야지. 노후 준비해야지 같은 충고나 조언을 해오면, 세 번 심호흡하고, 눈을 두 번 깜빡거리고, 단 번에~
1. “그건 당신 생각이고”를 속으로 크게 외친다.
이 말이 상대방 입에서 나오면 듣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쁘다. 그다음에 무슨 좋은 말이 나오든 <겨울왕국> 엘사의 마법처럼 둘 사이에는 얼음이 쫘악 깔린다. 관계가 멀어지는 쪽으로 정리가 되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말로 뱉는다.
2. 꼭 ‘당신’이라고 칭한다. 그건 엄마 생각이고, 그건 아들 생각이고, 그건 부장님 생각이고 이렇게 바꿔 말하면 효과 떨어진다. 엄마, 아들, 부장 이런 관계 용어가 들어가면 뭐든 분리가 잘 안 된다. 나와는 다른 가치관과 역사를 가진 타인, YOU. 꼭 ‘당신’이라고 칭한다.
3. “내 생각은 이렇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까지는 속으로 외치고, “내 생각은 이렇다.”는 상대방 사정 봐주지 말고 깔끔하게 내뱉는다. 무리에서 쫓겨나 ‘나는 자연인이다’ 영상 찍더라도, ‘나는 나.’라는 마음으로 밀고 나간다. ‘미역국 끓일 때, 미역 볶고 나서 물 넣는 것은 그건 당신 생각이고’-여기까지는 속으로- “내 생각에는 그냥 다 한꺼번에 넣고 끓어도 맛있어요.” 이러면 된다.
그들의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그들의 불안’에서 온다. 내 자식이 밥벌이도, 짝짓기도 못하고, 대도 잇지 못하고 무리에서 쫓겨날까 봐 그들은 불안한 거다. 그들의 불안은 그들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불안은 그들이 알아서, 내 불안은 내가 알아서. 불안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다.
본인의 문제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 자식 입장에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늘어놓는 부모.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를 ‘문제’라 생각하고 못 견뎌하고, 도와주는 것도 없이 자기 할 말만 다하는 가족.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에서 잔소리와 참견을 하고 오지랖을 펼치는 지나가는 행인 1과 행인 2.
‘뭐, 때 되면 하겠지요, 때 되면 생기겠지요,’와 같이 대강 얼버무리고 상황을 빠져나오면 후유증 크다. 함께 밥 먹으면서도 체하고, 다음 명절에는 집에 내려가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1분도 내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시간이다.
무리에 이미 속한 족속들은 상대를 어떻게든 그 무리로 끌어들여 무리를 존속시키려는 본능이 있다. 결혼 안 한 삼촌이 나에게 ‘언제 결혼할 거니?’라고 묻지 않고, 취업 못하고 놀고 있는 선배가 나에게 ‘취업은 안 하니?"라고 묻지 않는다. 시험관 시술 여러 번 하고 아이 갖기를 포기한 사촌동생이 나에게 ’ 형은 애 안 낳아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상대가 어떤 감정일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무심한 사람들이 그렇게 묻는다.
재수한 딸내미의 학교가 결정되니, 이젠 서울에서 살 집이 문제다.
“기숙사 먼저 신청해보고, 연계 숙소도 신청하고, 강원학사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말이 길어지니, 내 불안이 고스란히 말속에 묻어난다. 쿨한 딸내미는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속으로 ‘그건 당신 생각이고’를 크게 외쳤음에 분명하다. 나에게 들린 다음 말은 이렇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오늘도 불안하니까 주저리주저리 브런치에 '불안은 식물이네 아니네 ' 그런 글이나 쓴다. 정말, 나도 내 불안은 내가 좀 알아서 하자. 새해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