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Mirror를 유배 보내는 한 시간
"선생님! 주말에 왜 저에게 전화 안 했어요?"
그룹 과외하는 중1 영준이가 날 보자마자 따지듯 물었다.
"왜 내가 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숙제했는지 전화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숙제는 했고?"
"아뇨."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질끈 물어뜯는 영준이는 분하다.
"숙제를 안 해서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그게 아니고…. 선생님이 주말에 숙제했는지 전화한다 해서, 핸드폰을 침대 밑에 던져놨어요."
"왜?"
"선생님 전화 못 받았다 하려고요. 그런데 왜 전화 안 한 거예요?"
영준이는 억울함에 이제 거의 울려한다. 내가 숙제했는지 물어볼까 봐, 친구들과의 연락도, 핸드폰 게임도, 유튜브 영상도 모두 포기했는데, 선생님은 전화를 안 한 거다. 몹쓸 선생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다른 아이들에게는 가끔 주말에도 숙제 체크 전화를 돌렸지만, 영준이에게만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하면서 영어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영준이는 그 주말에 핸드폰을 포기했다.
내가 언제라도 그것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만 난 그것에서 자유롭다. 중독 기미가 보인다. 브런치에 글 하나 올려놓고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들여다보고, 누가 라이킷이라도 누르면 득달같이 달려가 쳐다보며 흐뭇해한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남의 집 웰시코기 씰룩이는 궁뎅이를 한참 쳐다보고 혼자 실실 대니, 이거 핸드폰 중독 맞다!
불안하다. 이유는?
불안하다. 핸드폰 중독일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핸드폰 중독일까 봐. 내가 진짜 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봐.
없어도 잘 살 수 있는가? 없으면 손 떨리고 예민해지고, 괜히 아이들에게 신경질 부리고, 심장 쿵쾅거리고 불안, 초조하고 남의 Blalck Mirror에 자꾸 눈길이 간다면, 중독 맞다!
어떤 중독이던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번에 싹둑 자르면 된다. 하지만 연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그렇다면 매일 하루에 1시간(혹은 2시간) 핸드폰을 유배 보내자.
1. 타이머를 설정하고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유배를 보낸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에도 멀어진다. 쓰레빠를 끌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사다리를 오르고 어둠을 헤쳐나가야 핸드폰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접근성 몹시 나쁜 곳일수록 효과는 좋다.
2. Forest 어플을 사용한다.
핸드폰과 짧은 이별마저 참기 힘들다면, 옆에 두고 핸드폰에게 나무를 심게 하자. 내가 설정한 시간만큼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무가 자라고, 그 시간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2,500점이 넘으면 아프리카에 진짜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어플이다.
3. 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할 일을 미리 정해서 한다.
책 읽기, 창업 준비, 아이와 놀아주기, 외국어 배우기 등 미리 정한 한 가지를 집중해서 한다. 먼산 바라보기, 뜬구름 잡기, 밤하늘 별 헤기는 안된다. 그런 것 하고 있으면, 어느새 마법처럼 내 손에는 유배 보낸 핸드폰이 돌아와 있다.
유배당한 핸드폰 잘 있을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원통하다고 남은 배터리 토해내고 스스로 목숨 끊을 만큼 아직 감성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유배당한 김에 정약용 코스프레하며, 독서와 저술에 힘써 학문체계를 완성하겠다고 덤빌 만큼 지적 야망이 크지도 않다. 핸드폰이 잘 있는 동안, 나의 뇌도 조금 쉬고 집중력을 발휘해 해야 할 일도 하면서 인간성을 회복해나가면 된다. 정신이 번쩍 들게 먼 곳으로 유배를 자주 보내거나, 나무 심는 노역을 매일 시켜주자.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만큼 노예화된 사람은 없다. -괴테
"비벼주고, 만져주고, 쓰다듬어주고, 말도 걸어주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들여다보니까 네가 내 애인이라도 된 줄 아는데…. 넌 금속과 유리와 부품 조각으로 이루어진 기기일 뿐이라고."
이렇게 매정하게 옆에 놓인 핸드폰에서 호통을 쳐본다.
꺼진 Black Mirror 화면을 슬그머니 켜보니, forest 앱에서 귀여운 작은 나무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지금 집중하지 않으면 네 나무는 변사체가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협박이나 하면서.
마음이 짠하다.
아무래도 내가 핸드폰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듯하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