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이유] 그냥 좀 과하게
칭찬해주면 안되나?

고맙다 여러 번 말해도 괜찮은 이유

by 글쓰는공여사

"원하는 그림으로 가져가세요. 선물이에요."

독서모임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수제 책갈피를 자랑스럽게 펼쳐 놓으며 내가 말했다.

"이쁘다. 글도 좋고."

독서모임 멤버 한 명이 가볍게 칭찬을 하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가져온 1,000원짜리 복권 선물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복권을 나누며, 대화 주제는 나의 책갈피에서 오늘 밤 당첨 번호가 나오는 복권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어, 어, 이건 아닌데….


내가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주려고 얼마나 마음 쓰며 정성스레 만든 책갈피인데…. 너무 빠르게 그 순간이 감흥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내가 기대한 만큼 반응을 못 받아서. 진짜 불안의 이유는?

불안하다. 내가 기대한 만큼 반응을 못 받아서. 타인의 반응과 인정에 목마른 찌질이가 될까 봐.


1581991666787.jpg 내가 만든 수제 책갈피들

미국 유학 때 사두었던 예쁜 그림책을 지금껏 버리고 있지 않다가 수제 책갈피로 변신시켰다. 그림을 깔끔하게 자르고, 뒷면에 멋진 글귀도 써넣고, 허전한 공간에는 이모티콘도 정성스레 그려 넣고 코팅을 했다. 20개를 따로따로 자르고, 80번 또깍또깍 사각 모서리도 이쁘게 커팅하고, 펀치로 20번 구멍을 뚫고, 다이소에서 사 온 색실 중에 어울리는 걸 찾아 하나씩 묶어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가볍게 내 책갈피를 책에 끼워 넣고 복권 얘기만 열심히 한다. 독서모임이 끝난 뒤 카톡방에도 내 책갈피 얘기는 없다. 복권 번호 맞춰보았는데 꽝이더라는 얘기만 줄줄이다. 나도 안다. 기쁘게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들의 몫이라는 걸. 내가 원하던 반응까지 그들이 해주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다.


1. 그들은 내가 정성껏 준비한 시간을 모른다.

쓰고 코팅하고 자르고 붙이고, 다이소에 색실까지 사러 가서 만든 그 시간을 그들은 모른다. 나의 수고로움을 미루어 짐작하지도 추측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다.


2. 그들은 내가 준비하면서 설레었던 마음도 모른다.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어떤 글귀를 써주면 좋아할까 고민하고, 책갈피 선물을 보고 좋아할 그 순간을 상상하며 준비한 내 마음의 설렘을 그들은 모른다.


비싼 돈 들여 오랜만에 파마를 하고 남편이 이쁘다 멋지다 말해주길 기대한다. 시간 들이고 돈 쓰고, 에너지 쓰고 마음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뭐? 뭐가 바뀌었는데?"

"...."


아! 이번에 국어 2등급 받아 너무 기쁘고 행복한데, 성적표를 확인한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으흠~ 수학 성적만 좀 더 올리면 되겠다."


새로운 미각을 찾아 요리책보며 2시간째 연구하고, 재료 사러 동네 마트에서 비싼 재료 눈 찔끔 감고 사와, 생전 처음 시도한 요리를 내놓았더니, 가족이 이렇게 말하면?

"괜찮네..."


그냥 좀 과하게 칭찬해주면 안 되나? 그게 칭찬이나 인정받고 싶은 찌질한 욕구라 하더라도.


진짜 상대를 감동시키긴 정말 어렵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로드를 머리에 돌돌 말고, 파마 액을 뿌리고, 한~참 기다리고, 다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로드를 풀고, 그런 끝없는 작업을 장장 여섯 시간. 그리고 마침내 내 머리 위에는 둥글둥글하고 덥수룩하고 빠글빠글한 머리가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emiliano-vittoriosi-y9rxJ1YiscU-unsplash.jpg 아프로 헤어 정도는 해야 변한 걸 알아채려나?

아프로 헤어하고 바비 흑인 인형처럼 변해서 나타나야 남편 입이 헉하고 벌어지려나? 전과목 모두 1등급으로 찍어야 엄마 이 20개를 동시에 보려나? 참치 눈알 요리나 거미라도 튀겨야 독특하다 참신하다 칭찬하려나?


난 누가 나에게 선물이나 서프라이즈를 내놓으면 이렇게 반응하겠다 결심해 본다.

1. 일단 감탄부터 하고 본다.

가식적이라고? 노노노노~ 칭찬과 인정에 목마른 사람에게 내가 내뱉는 감탄은 새발의 피다. 항상 부족하다. 차고 넘치는 경우는 없다. 과한 칭찬은 독이라고? 독이 될 만큼 감탄하며 칭찬해준 기억이라도 있나?

2. '고맙다'라고 여러 번 말한다.

이렇게 말해도 진정성 떨어지지 않는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나 서프라이즈를 내놓은 사람에게, 꼴랑 한 번 뱉는 '고맙다'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3.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글귀가 참 마음에 드네요. 지금 제 상황에 너무 잘 맞네요. 소중히 쓸게요. 과정에도 관심을 갖는다. 집에 코팅기가 있어요? 색실은 어디서 구입했어요?라고.


이 파마 이름은 뭐야? 어디 헤어숍에서 했어? 멋지다! 국어성적이 많이 올랐네. 노력을 정말 많이 했구나. 잘했네~이번에 특별히 신경 써서 공부한 부분이 있어? 와우~요리가 참 독특하고, 맛이 참 특이하다. 무슨 재료 쓴 거야? 요리 이름은 뭐야?

paul-hanaoka-w2DsS-ZAP4U-unsplash.jpg 자, 과하게 칭찬받을 준비 됐습니다.

'책갈피의 기분'이라는 책이 있다는데 뭔 내용인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가 만든 수제 책갈피에게도 기분이 있을 것 같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 주목받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평범한 나락으로 떨어져 누군가의 책 속에 가만히 파묻혀 있으니 ….


들여다보니 이쁘다 생각하고, 다음에 만났을 때 '책갈피 잘 쓰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책갈피의 기분이 개떡 같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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