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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Apr 19. 2020

아이의 출생 직후 동영상을 잃었다

정확히는 모조리 잃어버릴 뻔 했다

  250기가바이트의 휴대폰은 버거웠는지, PC는 계속 인식을 못하고 있었다. 한 번에 사진을 읽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듯이. 답답해진 나는 camera 폴더를 외장하드에 ctrl+x, crtl+v를 해 버리고 말았다. Oh my god. 다시 돌이킨다면 두번다시 그런 짓은 하지 않을텐데. 시간을 10분만 돌릴 수 있다면.


외장하드에 저장된 내용은 없는데,

100기가의 파일은 죄다 날라간 상황이었다. 다행히 2018년의 사진은 클라우드에 있는데, 아뿔사 동영상이 날라간 것이다. 2018년이 무슨 해이던가. 내가 아이를 얻은 해이다. 그말인즉슨, 태어나기 직전 진통을 앓으며 아이에게 했던 이야기, 태어난 직후 첫 울음 소리, 조리원에서의 생생한 얼굴이 모조리 날라갔다는 뜻이다.


갑자기 세상을 잃은 것만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 세상에, 세상에 맙소사. 아니야, 아니지? 라고 아무리 되뇌여도 없어진 영상이 살아날 리가 없었다. 일을 하러 타도시에 간 남편에게 새벽 1시 30분에 울음진 목소리로 전화했다. 여보, 내가 미친짓을 했어. 미쳤나봐. 미쳤어 정말.


남편은 나를 달랬고, 자기에게도 몇몇의 영상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굵직한 것들은 갖고 있다고 달랬지만, 오 내게 그것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찍었던 내 영상들. 여의도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도 그렇게 숨을 참으며 열심히 찍진 않았을 거다. 그 때 찍었던 그 어떤 핸드헬드 영상보다 내 휴대폰 카메라 동영상 아이 영상이 안 흔들렸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내게 있어서 값어치는 따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이의 첫 웃음, 아이의 첫 엄마 소리, 아이의 모빌보기,  아이의 첫 뒤집기, 아이의 스스로 앉기, 아이의 서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쌍욕을 스스로에게 하고나서, 휴대폰을 아무리 봐도 회색공간에 ?박스가 날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왜 너 편하자고 날 잘라내기했니? 훗 그 댓가다 이 멍청아"라고 회색 박스들이 나를 비웃었다.



네이버의 위대한 검색으로 덤스터라는 앱을 알아냈고, 바로 앱을 돌려보았다. 오... 오 맙소사, 하나 둘 최근에 아이와 함께 자는 시간에 틀며 보았던 영상이 복구됐다. 그 때 보지 않았던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2018년, 2019년 사진과 동영상의 손실이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얼추 짐작컨대 반은 건진 듯 했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탄생 직후 시뻘건 핏덩이의 울음소리가 영상 속 플레이에서 들리는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나는, 그나마 조금 안심을 했다. 새벽 5시가 지나 동이 트고 있었다.



그래도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아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어찌나 마음이 아렸는지 몰랐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겨내며 침실로 들어간 순간, 깨달았다.


아이가 내 옆에 있다.




얼마나 내가 낸 것이 욕심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말았다.


아이가 지금 아프지 않고, 아이가 새근새근 잘 자고 있음이 얼마나 축복인지 그 새벽 비로소 깨달았다. 그깟 영상파일이 몇 개 사라짐에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내 아이는 이렇게 내 옆에서 잘 자고 있는데,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고 허상에 매달렸던 엄마의 집착은 얼마나 부질없고 못된 것인가.



4월 18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남동생은 앞으로 찍을 영상이 얼마나 많은데, 그쯤을 다행으로 알아라 라며 위로아닌 위로를 했다. 나에게 아이와 함께 할 미래가 있어서 다행임을 다시 감사했다.



그리고 달력을 보고서야 나의 소유욕을 좀 더 자책했다. 

자기 전 좀 더 기도 했다. 4월 16일 그 아이들의 명복과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마음과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위해. 이 부족한 사람은 결국 그들의 아픔에 한 겹의 비늘조차 되지 않을 상실감에 아파했구나 했다.


부모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이해를, 그리고 평생 노심초사 살펴야 하는 그 자격을 겨우 18개월짜리 엄마는 다시 되새김질해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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