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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Dec 30. 2021

나는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찾는다

이것은 나의 절망이기 전에 너의 일이기에


또 다시 한 해가 훌쩍 지나, 세 돌이 되었고 너의 병원에 갈 약속이 기어코 돌아왔다.

엄마는 네 생일이 있는 시월에 병원 가는 일이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 온전하게 시월을 즐기고 싶어 11월, 12월로 미루고 엠알아이를 받게 했지.

한살이 더 큰 너는 이제 수면 가스 없이도 수면제를 주사할 수 있었고, 더 의젓하게 검사받는 모습에 엄마는 또 여전히 미안했단다. 엄마가 다 미안한 건, 엄마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사고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열달 품은 어미의 마음이란다. 그냥, 이 모든 것이 엄마로 인한 마음은 네가 나로부터 나서 였겠지.


이번에도 그냥 아무 일 없겠지. 그냥 내년에 오라는 뻔한 예약을 잡겠지. 엄마가 마음을 놓을 때마다 기어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그 아주 진부한 징크스를 또 잊고 말았지 뭐냐.

이번엔 소식이 안 좋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는 한명만 들어갈 수 있었고,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했단다. 왜냐하면, 아빠가 엄마보다 이성적으로 이 일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아빠는 엄마의 질문지를 갖고 교수님을 만났고 어떤 질문은 너무 하찮아져 버리는 그런 결과를 듣고 말았단다. 예를 들면, 점만 있는 채로 평생을 살 순 없나요? 그건 유전자 검사에서 알 수 있도록 나오나요? 같은.


네게 시신경 이상과, 척추에 이상이 보인다는 소견을 듣고 엄마는 크게 낙심했어.

사실, 눈물이 펑펑 나오지도 않았단다. 그냥 '내게 왜 이런 일이? 우리 애에게 왜 이런일이?'하는 생각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 아빠가 우리 아이가 비타민 D가 아주 충분해서 이제 안먹여도 된다고, 정말 아주 크게 문제 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그 어떤말을 덧붙였지만, 엄마에게는 그저 그런 말들이 겉절이 같았어. 엄마는 결국 F같은 한 해의 성적표를 받은거야.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다른 부모들의 모임에 들어가고,

매일 브로콜리 새싹 즙과 사과 식초를 먹이고.


아무런 약도 줄 수 없는 네게 엄마랑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마치 산에 가서 약초를 캐다 달여 먹였다 같은 민간요법처럼 시시한, 그런 일들만 해야한다니 마음이 터지더라.


4월에는 안과 협진을, 7월에는 다시 MRI를.

엄마와 아빠는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그래, 절망하고 낙심하고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매일 일어나. 매순간 매초, 너의 미래가 건강하길 조바심내며 감정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러나 엄마는 다음 시험을 치루기 위해 일어서야해.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밥상을 엎어버릴만큼, 우리 인생은 단순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그래 건강만 해라, 공부는 하나도 하지마렴. 이런 마인드는 오히려 네가 사는 세상을 더 힘들게 할꺼잖아.  너에게 더 좋은 환경, 네가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심지, 모든 것들을 다시 차곡차곡 흙을 돋우듯 모아볼께.


미래의 너가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엄마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엄마의 절망은 이제 사치이기에. 매일의 평온함에 감사하고, 또 가치있게 보낼 수 있기를 원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네가 부디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지켜봐야한다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다시 한 숨 돌리고 재정비하고 싸울 수 있도록 앞으로의 3년을 전장에 나서는 군인처럼, 다시 투구를 고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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