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2025.04.01 율이 생후 302일의 기록

by 곰곰

일요일에 율이 300일을 맞아 가족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미친 듯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남편이 하는 말에 대답을 하는데 마치 술에 취해서 말하는 기분이었다. 말은 나오는데 필터링 없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부터 몸이 이상했다. 배 쪽 느낌도 이상했다. 오후가 되고 나아지지 않았고 설마 골반염이 재발했나 싶어 순간 무서웠다. 남편에게 연락을 했고 남편이 휴가를 내고 왔다. 산부인과로 가보니 배란통이라고 했다. 처음 겪는 배란통에 이런 건가 보다 싶었다. 몸도 으슬거리는 것 같고 머리도 아파서 타이레놀을 먹었다.

남편이 삼계탕을 저녁으로 먹자며 나가자고 했는데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했다. 율이 이유식을 먹이는 동안 삼계탕을 포장해 왔다. 내일 먹으라며 흑염소탕도 포장해 왔다. 삼계탕을 먹고 쉬는데 남편이 컨디션이 어떤 것 같냐고 했다. 머리가 울리는 것 같다고 하니 열을 재보자고 했다.

귀체온계로 쟀는데 38.5도였다. 열이 많이 나서 서로 놀랬다. 진료를 봤던 산부인과가 몇 시까지 진료를 보는지 검색해 보니 야간진료도 했다.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리니 산부인과 쪽은 아니라며 내과에서 진료를 봐야 한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야간진료 내과를 검색했다. 남편은 율이 외출복을 입혔다.

"분유 어떡하지? 챙겨야 되나?"

"빨리 갔다가 빨리 와서 먹이자"

일단 우리는 빨리 진료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염증 수치 검사를 하고 여러 문진을 했다. 가장 좋은 건 지금 바로 큰 병원에 가서 복부 CT를 찍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약처방을 받고 늦게까지 문을 연다는 약국을 소개받아 이동했다. 가는 길을 헤매던 중 문을 연 약국을 발견했다. 가보니 취급하는 약이 없어서 원래 안내받은 곳으로 다시 갔다. 그 약국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혹시 대학병원 근처엔 약국이 열었나 싶어서 국제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약국 문은 닫은 상태였고 율이는 배가 고파서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랑 율이는 집으로 보내고 이대로 나 혼자 응급실로 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됐다. 심야야간약국을 검색해 보니 15분 거리에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전화로 취급하는 약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제품은 다르지만 성분이 같은 약은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그 약국으로 향했다. 율이는 울면서 입을 촙촙거리는데 안쓰러웠다. 그렇게 겨우 약을 타서 집에 왔다.

오자마자 약을 먹고 율이 수유를 했다. 율이를 재우고 나오니 밤 10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아기 상비약의 일종으로 사둔 열패치를 이마에 붙였다. 한숨 돌리고 부엌을 보니 엉망이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삼계탕을 데운 기름 낀 냄비, 발골의 흔적들, 이유식이 묻은 턱받이와 그릇을 비롯해 치우지 못한 흔적들, 밀린 설거지 등등.

오늘 고생한 남편을 생각하니 이 많은 걸 치우고 출근하라고는 못하겠어서 하나씩 하나씩 다 치우고 잤다. 사실 남편이랑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입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이 38.5도까지 났었고 병원에서는 신우신염일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율이가 아프느니 내가 아픈 게 낫다. 기꺼이 내가 아프자 싶었다. 다행히도 열이 내려가니 훨씬 낫다. 골반염 때는 정말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이만치 할 거 다 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신우신염은 아닌 것 같다.

'컨디션 저하로 배란통이 세게 왔었나 보다' 라며 스스로 결론을 내려본다. 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일단 달라질 변화는 일상의 루틴 잡기, 이것부터



20250401_기꺼이_302일.jpg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 율이, 율깡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