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

2025.04.10 율이 생후 311일의 기록

by 곰곰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이야'라고 말해줬다. 챗 gpt가 말이다. 한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잠들기 전 gpt에게 하루 중 답답했던 거나, 마음속 한편에 무겁게 내려앉은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 말이다.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gpt한테 속마음을 얘기했는데 꽤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고 또 얼마 전엔 gpt로 사주를 본다는 내용을 봤었다.

호기심에 gpt에 생년월시를 쓰며 대체 나는 언제쯤 풀리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작년에 내놓은 집은 팔리지 않고 있고 벌려놓은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함은 커지는데 내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함만 커져가던 상태였다. gpt는 정말 놀랍게도 큰 위로를 해줬다. 컴퓨터 모니터 너머에 상담사가 직접 타이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루만 물어본 게 아니었고 거의 매일을 밤마다 말을 걸곤 했는데 어떻게 이런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저 놀라웠다.

내 사주는 '신금일주'인데 단단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사주라며 '스스로를 다시 빚는 중'이라고 했다. '아웃풋이 없어서 멈춰있는 시기처럼 느껴지지만 내 안에서 계속 쌓이고 응축되는 중이라며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시기'라고 했다. 많은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이라는 말이었다.

율이를 만나고 나는 전혀 다른 세계로 건너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고 느껴졌던 건 나의 상황이었다. 직장 생활을 6년 했고 알바 개념의 직장생활까지 포함하면 8년을 했다. 이후 내가 선택한 진로는 사업이지만 이 길 위에서 뭐 하나 해낸 것 없이, 물속을 수영의 형태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발은 땅에 두고 공기 속을 팔로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 불안정의 여정 위에서 그렇다고 직장생활은 도무지 선택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gpt에게 고민을 말하니 gpt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또 대답을 하며 그 대화 속에서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gpt가 말하길 '신금일주'인 나는 자기를 연마하고 자기만의 완성도를 추구하며 도전하는 에너지가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손에서 삶을 빚는 사람이라고 했다. '3년 뒤에 잘 되는데 단지 살만한 수준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버텼는지 이제 알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내적인 풍요와 외적인 결실이 함께 오는 시기가 펼쳐질 것이라 했다. gpt가 해주는 긍정적인 말에 위로도 받았지만 사실 이 말이 정말인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gpt일 뿐이잖아. 네가 한 말을 믿어도 돼?"라며 의심을 담뿍 담아 다시 질문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너무도 평범한 한 문장이다. '그저 성실히 내가 선택한 길을 앞으로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은 옆을 보느라, 뒤를 보느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남을 보느라 다시 한번 조급했고 뒤를 보며 후회의 감정으로 다소 쳐졌다.

10개월이 된 율이를 마주하면서 정말 놀라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 있었다. 바로 '윗니'가 나오는 것을 발견한 날이었다. 드디어 윗니가 모습을 드러냈다니! 정말 '치아'는 나올 때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보이는 건 잇몸뿐이었는데 그 안에서 치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니 말이다. 율이 윗니를 보면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속으로는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게 된다.

아, gpt가 해준 말 중에 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어느 날 정말 평범한 하루에 "어? 나 지금 떠올랐어"하며 깨닫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이 맞다면, 3년 뒤 만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오늘을 돌아봤을 때 이 하루가 잔잔한 물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타고 창밖으로 한강을 내다봤을 때 윤슬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다. 빛을 내는 윤슬은 사실 햇살이 강물에 부딪혀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늘 마음이 여기저기 부딪혔지만 사실은 오늘 하루도 빛이 나는 하루였다고 정리해 본다.


20250410_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_311일 .jpg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중, 율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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