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일

2025.12.23 율이 생후 568일의 기록

by 곰곰

사람이 되고 있다. 내가 말이다. 내가! 사람이었지만 또 다른 사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 그래서 또 다른 사람. 아는 동생이 정리해 주길 엄마가 된다는 건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율이에겐 내 심장도, 내 눈도 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내가 하고 있다니.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 율이가 태어남으로 해서 나도 다시 태어났나 보다.


오늘 오전 율이 소아과 진료를 기다리며 무진장 떨렸고 ‘제발 괜찮아라’하며 속으로 빌고 빌며 들어간 진료실. 다리를 절뚝거리고 질질 끌며 걷고 있는 율이 모습이 담긴 영상, 엄지발가락이 위로 들린 사진을 본 의료진이 말했다.


“어머니, 이건 소아정형외과를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소견서를 받고 소아정형외과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부리나케 갔다. 어제 처음 만난 돌봄 선생님과 함께. 오전까지만 진료를 본다는 말에 초조했다. 그때 시간이 오전 10시 30분경.


북적북적 사람 많은 로비에서 접수를 기다리는 데 순번은 저 끝에 있고, 행여 오전 시간이 지나가 진료를 못 볼까 봐 어찌나 불안하던지. 겨우 접수를 마치고 엑스레이를 기다리는데 대기 순번을 알리는 화면에 율이의 나이가 1세로 떴다. 아니 율아, 너가 최연소 환자일 거다.


18개월에 처음 찍는 엑스레이. 방사선 걱정은 뒤로 한 채 그저 뼈 손상만 없기를 바라며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게 된 게 감사했다. 다리를 절던 율이 모습이 충격이었고 행여나 이렇게 자라게 될까 봐 아찔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친정엄마 연배의 돌봄 선생님 옆에서 난 그렇게 초보 엄마 티를 팍팍 내며 눈물이 나고 또 났다.

돌봄 선생님을 구하게 된 건 허리디스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난주 일요일, 허벅지가 저리고 당기는 증상을 마사지로 해결하다 그날은 일어날 때마다 ‘악’ 소리가 나게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다. 물리치료를 받고 오게 되겠지 싶었는데 아니, 생각도 못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게 바로 ‘디스크’. 5,6번 디스크가 파열되고 돌출돼서 신경을 누르고 이로 인해 허벅지 통증이 생겼다는 것.


어안이 벙벙한 채로 얼떨결에 신경주사 치료까지 받았다. 사실 주사실은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온 공간이 아니었으며 나는 마사지 베드 같은 곳에 엎드리게 됐고 납 조끼를 입은 간호사들이 시술을 준비했다.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그 자체로 긴장되었고 신경주사를 맞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치료가 끝났을 땐 눈물 콧물이 턱밑까지 내려와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는커녕 얼굴을 가린 채 주사실을 나오기 바빴다.

18개월 동안 달리고 달려온, 육아. 올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12월엔 세상에나 허리디스크라니, 한 해의 마무리가 화룡점정이다 싶었다. 내 몸이 대체 어디까지 망가지는 것인지 모두가 담담해 보이는 병원 안에서 나만 미친 사람처럼 울었더랬다.


작년이었나 올해 초였나 남편과 사주를 봤는데 “올해 아이가 아프거나 엄마가 아파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분이 말한 ‘엄마’가 난 우리 친정 엄마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해를 지나 보니 나를 지칭했다는 걸 알게 된다.


공교롭게도 오늘 오후엔 나의 주사치료가 또 예약돼 있었다. 이번엔 꼬리뼈 주사까지.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 같은 하루의 끝. 마치 나 자신이 너덜너덜해진 종이가 된 것 같았다. 한지처럼 고운 종이 말고 살짝 건드렸는데 쫙- 찢어질 것 같은 먼지 폴폴 나는 묵은 종이.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에 율이가 매달려 “엄마!”하고 반갑다는 듯이 크게 불러준다. 행여나 이상이 생겨 율이가 발에 깁스를 하고 집에 왔을 상상을 하니,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


강율! 넌 아프지 말아라. 엄마가 온몸으로 막는다. 우리 율이 아프지 마. 하...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엄마 아빠가 가슴이 미어지나. 우리 다 같이 건강하자!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혹시나 선물처럼 둘째가 태어난다면 둘째 이름은 ‘강건’이다. 앞뒤로 튼튼하게!


20251223_다시 태어나는 일.jpg 강율, 너 정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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