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9 율이 생후 554일의 기록
율이가 엊그제부터 종종 옷을 올리더니 자기 배꼽을 가리킨다.
“율아, 엄마도 여기 배꼽 있어”
입고 있던 티셔츠를 위로 올리며 내 배꼽을 보여주니 웃는다. 내가 눕자 율이가 내 옷을 위로 올리더니 배꼽을 찾는다.
“율아, 율이 배꼽 있지. 율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는 증거야”
쏙 들어가 있는 배꼽을 만지는 게 재미있는지 자기 배꼽을 가리켰다가 또 내 배꼽을 찾고 만진다.
“율아,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탯줄로 연결이 돼있었는데 엄마가 밥을 냠냠냠 먹으면 탯줄로 영양분이 들어가서 율이도 밥을 냠냠냠 먹었어”
그렇게 내 배꼽을 보는데 나 역시 나의 엄마 뱃속에 있었고, 우리가 연결돼 있었단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나의 엄마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평생 기억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
올여름이었던가, 아빠가 우리 삼 형제의 어릴 때 영상을 가족 카톡방에 올린 적이 있다. 셋 다 내복 차림으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언니는 5살 정도, 나는 3살 정도, 내 동생은 완전한 아기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주 아이스러운 말투로 엄마에게 말을 걸었고 엄마는 다정하게 답해주고 동요를 불러주었다.
그 영상을 보는데 난 너무도 놀랐다. 엄마도, 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다정했다는 것에서. 애석하게도 내게 있어 3살의 시기는 스스로 기억하기가 불가능하다. 더듬더듬 과거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려 해도 4-5살 무렵쯤.
솔직히 어린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의 화난 얼굴이 먼저 떠올라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궁금했었다. 내일모레 마흔이란 나이를 앞두고 내 마음속에 살던 ‘그 시절의 어린 나’도 한 뼘 자라나 더 이상 엄마가 밉다거나 무섭 거나한 감정은 사라졌지만 왜 그 화난 얼굴이 둥둥 떠오르는지 알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완전히’ 라면 완전히.
율이는 17개월의 어느 순간부터 떼쓰기의 강도가 높아졌다. 18개월부터 육아가 만만치 않다는 말을 익히 들어서 각오는 했던 터였다. 18개월이 다가오며 마치 그러데이션처럼 시작됐나 보다 했다. 그럼에도 여러 날 동안 내 얼굴 근처에서 울면서 소리까지 지를 때면 귀가 찢어질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지치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에 내 딴엔 최선을 다해 준비한 밥을 거의 남기고 이걸 정리하니 싱크대 배수구가 가득 차는 일이 반복됐던 시기가 겹쳤다. 행여 배고플 까봐 다른 반찬으로 다시 차려주는 것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맞이한 어느 주말, 율이 밥을 준비하려고 요리를 하는데 냄비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화를 분출한 것이고 나는 삼켰을 뿐 화가 난 건 똑같다’
어릴 때 나는 밥을 좀처럼 먹지 않는 아이였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먹이려고 하면 입가를 방패로 막듯 굳게도 막아냈을 거다. 율이가 참으로 먹지 않던 시기에 창과 방패 같단 생각을 했다. 숟가락을 갖다 대면 휙- 피했고 틈을 노려 쑥- 들이밀면 휙- 또 피하는 모습이 말이다. 휙-쑥-휙-쑥. 입가에서 벌어지는 승자가 정해진 싸움. 빈번히 율이가 승자로 끝이 나는.
나는 또래보다 월등히 작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반에서 키 번호로 1번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의 엄마는 나보다 한참 어렸을 나이에 아이 셋을 키우며 지쳤을 몸과 마음에다 걱정, 답답함, 누적된 피로감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이며 터졌을 테다.
밥 때문에 많이 혼났고 어떤 날엔 윷가락이, 옷걸이가 나에게 빠른 속도로 날라 왔고 안타깝게도 속도가 붙은 사물이 내 코를 강타한 날엔 코피가 나기도 했다. 한 번은 집에서 쫓겨나 문에 매달린 채 울고불고하는데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앞집 아줌마가 걸어 나온 적이 있다. 발가벗겨진 모습을 보인 것처럼 어찌나 수치스럽던지. 아빠는 엄마가 화가 많이 났으니 꽃을 사러 가자며 길을 함께 나섰는데 걸어가면서도 왜 꽃을 사러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날의 일. 나도 속상한데 내 마음을 풀어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지금도 친정에 가면 “너 이런 것도 먹어? 안 먹는 줄 알았지” “밥 좀 더 줘” 하면 내심 놀라는 눈치다. 밥 한 공기 더 먹는 게 대수겠냐만은 내게 있어선 ‘웬일이야’하는 예외적인 그런 일. 해가 넘어가면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밥’ 가지고 이러는 게 놀랍지만 그만큼 나의 엄마에겐 ‘내 밥 먹이기’가 그토록 힘들었단 걸 보여주는 것일 테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에게 화를 내면 깊은 상처가 된다는 걸 알기에 율이에게 차마 뿜진 않았지만 화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초콜릿을 우걱우걱 먹고 또 먹다 기어이 3 봉지를 모두 먹기도 했던 날, 그렇게 초콜릿으로 해결된 줄 알았으나 이러다 정말 터질 것 같아 남편에게 밥, 설거지를 모두 부탁하고 ‘마사지’를 받으며 내 시간을 가졌다.
조금이라도 혀에 거슬리면 먹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만치 예민했던 아이였을 거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 사이좋은 엄마아빠, 사랑이 넘치는 집. 그 화기애애한 집에서 왜 나만 그토록 힘이 들고 예민했는지 스스로에 대해 참 많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재작년에서야 힌트를 얻었다. 그건 뜻밖에도 사주풀이였는데 사주팔자를 구성하는 8개의 한자 중 무려 5개가 ‘금’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금속.
때론 마음에 공감해 주는 엄마가 아니어서 나의 상처가 깊어진 건 아닌지, 엄마를 탓한 적도 있었지만 뾰족한 금속 같은 아이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갔을지를 생각해 보면 이제 엄마가 이해가 된다. 그것도 ‘완전히’
그 시절 엄마 역시 ‘미완성의 사람’이었다는 것, 잘해주었기에 화가 났다는 것,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 이제는 모두 알겠다. 예민한 기질의 내가 그럼에도 둥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뾰족한 나를 넉넉한 품으로 품어준 엄마 덕분이다.
율이가 가리킨 나의 배꼽은 나의 엄마와 내가 연결돼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의 배꼽은 엄마에 대한 이해이자, 감사이자,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