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아버지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어요.
"사실 전 우울증만 있지 않아요. 공황장애도 있어요."
아버지는 바로 말했죠.
"큰일이네, 큰일이야."
아버지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어요.
"아이들 때문에 힘드니? 그렇지?"
"아니요. 다른 이유예요."
"그럼 뭐?"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어요. 이유를 직접 말할 용기가 아직 없거든요.
전 요새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요. 지친 거죠. 특히 저녁 시간에는.
에너지가 바닥이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이런저런 요구를 할 때면 견딜 수 없다고.
아버지는 듣지 않으셨어요. 아니 들을 여유가 없으셨을 수도 있죠.
아버지가 다시 말했어요.
"네가 짜증을 많이 내더라.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짜증 덜 내고, 운동 계속해라."
난 깨달았어요. 내 상황을 정확하게 '말'로 설명하는 일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요.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리 짐작하려고 노력해도 완전히 알 수 없죠. 게다가 아버지는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으려고 하시니 더하죠. 엄마도 아버지도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한 평생 그랬어요.
남들에게 속 한 번 썩이지 않은 모범생 딸이라고 자랑할 때면 난 기분이 이상했어요. 지금은 그 말이 끔찍해요. 엄마와 아버지에게 '싫어요.' '아니요'라고 말하며 반항해 본 기억이 없어요. 엄마는 무서웠고, 아버지는 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한창 예민할 사춘기 때, 아버지는 늘 술을 드셨어요. 일주일에 5~6번 정도요. 핸드폰도 없던 시절. 한번 술을 먹으면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드셨기 때문에 엄마는 늘 걱정했어요. 아버지가 어디서 쓰러져 죽지 않을까, 길바닥에 누워서 자지는 않을까? 난 엄마의 걱정과 불안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어요.
엄마는 늘 나를 앞에 앉혀두고 온갖 걱정을 늘어놓았어요. 엄마는 불안에 떠는 어린 나를 보지 못했어요.
생각해보면 엄마도 누군가에게 말할 사람이 필요하긴 했어요. 엄마도 힘들었거든요. 그땐 엄마도 젊은 나이였고, 인생의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잘 모르는 서툰 사람이었어요.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술이 엄청 취해도 집을 잘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엄마와 끝도 없이 싸우셨죠. 나는 어두운 방구석에 무릎을 끌어안고 울었어요. 무서웠고, 엄마가 집을 나갈까 봐 두려웠어요. 두 분이 싸우고 나면 일주일이고 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가끔 아버지가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는 연락이 올 때면, '실비 타운'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곤 했어요. 그 어두컴컴한 술집에요.
우울증이 한창 심할 때, 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내 몸을 때렸어요.
아버지가 소리치며 말했어요.
"제발 좀 참아봐라. 참으라고."
난 슬펐어요. 참아지지도 않고, 견딜 수도 없었어요. 전 한평생 참았단 말이에요.
이젠 모두 과거의 일이에요. 전 여전히 낫지 않고, 아파요. 그래도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아요. 제가 힘들어할까 봐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걸 도와주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1시간씩 놀이터에 가시죠. 할아버지랑 온 애들은 우리 집 애들밖에 없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송구스러웠지만 고마웠어요.
요즘엔 방학한 첫째 때문에 오전 시간조차도 꼼짝없이 아이를 봐야 하는 절 위해 큰 아이를 맡아주시죠. 그 덕에 제가 1~2시간씩 걸을 수 있어요. 저도 예전과 달리 아버지가 이렇게 노력해주시면 '고맙습니다'라고 자꾸 말해요.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르더라고요.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지만 표현을 잘 못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위에 언급한 방법으로 저를 도와주시죠. 제가 집에 축 늘어져 있으면 제가 좋아하는 "초밥 사줄까?" 항상 물어봐요. 전 대부분 고개를 흔들지만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요.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인생 대부분을 우울과 불안으로 지냈어요.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틀린 것도 아니라고 믿어요. 상담도 받고, 꾸준히 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니까 차츰차츰 나을 거예요.
항상 고마워요. 아버지도 오늘 밤은 잘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늘 제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치는 거 알아요.
-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