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가을, 둘째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우울증이 심해진 시기와 정확히 겹쳤기 때문에 내가 느낀 절망은 어마어마했다. 우울증이 먼저인지, 아이의 부정적인 변화가 먼저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둘의 문제가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친 건 분명했다.
아이는 쉴 새 없이 휴지를 뜯어서 코를 닦았다. 방금 쉬를 눴는데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변기 앞에 서 있었다. 밤에는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여러 번 깨서 엄마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짜증을 내며 엄마를 때렸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며칠 전까지 잘 놀고 멀쩡하게 보이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직장에서는 너무 바빴고, 함께 의논할 남편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밤마다 맘 카페며 온갖 소아정신과 병원, 한의원,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했다. 어디를 데려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밥맛도 없었다. 나날이 말라가던 나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낮에는 전화기를 꼭 붙들고 틈만 나면 쳐다보았다. 혹시 증상이 심해져서 선생님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이가 뜯어놓은 화장지 뭉치가 집안 곳곳에 나뒹굴었다. 화장실에 걸어둔 두루마리 휴지는 이틀이 채 가지 못했다. 콧물도 나오지 않는데도 연신 코를 닦는 바람에 아이의 코 밑이 벌겋게 헐었다.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누겠다고 변기 앞에 서 있는 녀석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달래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너무 두려웠다.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가 나한테 소리치고 화내서 그렇다고 말할까 봐 무서웠다.
아이가 저렇게 된 것이 오로지 내 탓 같았다. 불이 꺼진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참 많이 울었다. 내가 아이에게 한 모든 행동과 말이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그 흔한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아이의 증상이 한창 심할 무렵, 소아전문으로 유명한 병원에 갔다. 불안에 떨며 아이의 증상을 설명하던 내 말을 자르고 의사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건 다른 병원 가서 알아보시고요, 지금 얘는 키가 너무 작고 말라서 앞으로 얼마나 클지 장담할 수 없어요. 여기 예상 성장 키 보이시죠? "
나는 당장 진료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번지수를 잘못짚었다. 맞아, 이 병원은 심리문제를 다루지는 않잖아. 엉뚱한 곳에 가서 원하는 바를 기대했으니 내가 잘못한 게 분명했지만 당시엔 의사가 너무 야속했다.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라고 의사가 한 마디만 해줬다면...... 나는 그 병원에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아이에게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주었다. 눈만 뜨면 녀석을 껴안았다. "엄마는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엄마가 너를 사랑한단다." 밤에는 잠든 녀석의 옆에 누워서 사랑한다고 끝도 없이 중얼거렸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이가 짜증을 내더라도 다 받아주었다. 아이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온 식구가, 심지어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조차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사랑과 공감을 퍼부었다. 무조건 둘째가 1순위였다.
"그래, 그래. 맞아. 콧물이 계속 나오는 것 같지?"
"화장실 갔다 왔는데도 또 가고 싶구나. 그럴 수 있어."
"화가 나면 침을 뱉고 싶어? 뱉어도 괜찮아. 대신 화장지로 바닥을 꼭 닦자."
증상이 나타난 지 2~3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반드시 괜찮아질 수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 역시 애가 닳고 마음이 아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좀 더 지켜보자, 우리가 노력하면 될 거야."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집중적으로 공감과 사랑을 퍼부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느 순간부터 둘째의 행동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던 문제 행동이 차츰차츰 사라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아이에게 신경을 썼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나 역시 꾸준히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서 예전만큼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다.
아이는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두 달이 그렇게 지나갔다.
2019년 여름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났다. 둘째는 더 이상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 무조건 엄마를 찾는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마음에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며, 그건 바로 공감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발생했기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 무사히 돌아왔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엔 우리 가족이 퍼부은 사랑과 공감이 한 몫했다고 믿는다.
나는 한 평생 공감과 위로를 찾아 헤맸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나뒹굴었다. 내 결핍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지켜봤다.
나는 스스로 사랑과 따뜻한 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걸 인지하고 행동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엄청나다. 나는 계속 애를 쓰며, 노력하며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