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할 수 없는 문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by 키키 리리

*앞선 글(슬픈 가자미의 추억)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나는 시가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며칠 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심할 때는 구역질과 기절할 듯한 어지럼증이 생기고 짜증과 분노가 평소보다 늘어서 남편은 연신 내 눈치를 본다. 현관문을 열면 시어머니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거나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화를 내실 것 같다. 물론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두렵다.


일주일에 1번씩 시가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나는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어떻게든 내 얼굴을 비추고 싶지 않아 온갖 방법을 쓴다.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만 통화하는 게 익숙해서 시부모님도 나를 찾지 않지만 가끔 "OO아, 별 일 없지?" 이렇게 물어보시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짓는다.


당연하지만 시가 제사며 시부모님 생일, 영상통화 이런 것들은 모두 내가 챙긴다. 그런데 내가 직접 시부모님께 연락하지는 않는다.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편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어머님께 "넌 참 정이 없고, 매정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대방은 내가 자신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말조차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런 내 모습을 몇 년간 지켜보면서 '이 두려움은 어디서 기인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시가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장면은 단 하나뿐이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노기등등한 어머님이 나를 향해 소리치는 장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난 목소리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나는 결코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방인이고, 목소리를 내놓은 인어공주와 같으며,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내몰린 화살받이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할까? 무시무시한 목소리는 세상 끝까지 나를 따라올 작정이다.


내가 엄마에게 듣던 '그 여자'에 대한 험담은 항상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했다. 시가에 대한 다른 이미지가 들어올 여지는 없었다. 늘 듣던 소리가 이러했으니.


불행은 엄마 몫이었으나, 고통은 내게도 이어졌다. 엄마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린 딸을 붙잡고 늘어놓은 시가에 대한 불만이 딸의 시선을 얼마나 옭아맸는지,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내가 겪는 많은 심리적 문제가 결국은 유년 시절 부모와의 불완전한 애착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가 슬픈 건,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어린 시절 저주처럼 따라붙었던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은 경작한 밭 곳곳을 파헤치고 다니는 두더지처럼 난데없이 나타나서 마음을 어지럽힌다. 멀쩡히 걸어가다가 스텝이 꼬여 넘어지는 건 내 잘못이지만 넘어진 자리에 거대한 웅덩이를 파놓고 옷까지 흠뻑 젖게 만드는 대상이 부모라면 난 누굴 원망해야 하지? 난 엄마를 원망하고 싶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났을 뿐이고, 이유를 찾는 행위는 고통만 동반할 뿐이다. 그러니 무얼 해야 할까? 옷이 흠뻑 젖어도, 두더지가 내 마음을 갉아먹어도 그저 살아야 할까?


남편은 시간이 흐르면 차츰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의사와 상담사는 왜 문제가 생겼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을 믿지만, 그렇다고 내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를 안고 살지만 딱히 해결방법은 모르겠다.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예전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걷거나 음악을 듣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도 괜찮다. 이런 일들은 내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도망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된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는 듯하니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일도 좋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면 쉽게 약해지고 감정적으로 변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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