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까?

by 키키 리리

얼마 전,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우린 같이 근무한 적이 없다. 내가 휴직한 작년에 새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맡을 업무는 업무분장표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그가 몇 가지 일을 더 하라고 요구했다. 부당한 업무 변경과 지시였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누군가의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누군가의 업무는 눈 녹듯 사라지는 현실을 수 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못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그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는 반말을 하며 나를 다그쳤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감 선생님, 저 불안장애가 있습니다. 공황장애요."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절박했다.

그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학교 근무는 제대로 하겠어요?"


서러웠다. 이해나 배려 따윈 바라지 않았다. 업무 희망서를 쓸 때, 내 병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난 늘 제대로 살기 위해 애썼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건 내 신념과도 같았다.


그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거의 자지 못했다. 식은땀을 많이 흘려서 밤새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다. 일은 제대로 하겠냐는 그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되감기 버튼과 재생 버튼을 번갈아 누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고작 이런 일 따위로 울고 싶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그냥 못 한다고 말하면 그뿐인데. 이렇게 마음을 잡으며 내가 겪은 일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치부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그가 전화를 했다. 학교에 언제 오냐고.


"곧 도착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중앙현관 입구에 섰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서서 대화를 했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그에 비해 난 등에 맨 가방도, 양 손에 든 짐도 무거웠다. 팔이 아팠다. 나는 이미 들고 있는 짐만으로도 버거웠다. 그의 강요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닫았다.


잠시 뒤, 내가 먼저 움직였다. 팔이 너무 아파서 그의 말을 계속 듣기 힘들었다. 비로소 그가 내 짐을 하나 들어주었다. 감사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생각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단 두 번의 대화로 우린 서로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새겼다. 그는 자신의 제안을 고려조차 하지 않은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일하기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를 댄다고 말했다.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환자는 직장에서 제대로 일 할 수 없다는 생각과 싸워야 할 것 같았다. 약을 잘 먹고, 치료를 잘 받으며, 꾸준히 관리한다면 여타 다른 사람처럼 충분히 일을 잘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내가 그러하리라 믿었으며, 충분히 그럴 자질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넌 마음이 아픈 사람이니 제대로 일을 못할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난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더 열심히 일해야 할까? '당신 생각은 틀렸다, 내가 그걸 증명해 보이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더 애를 쓰며 살아야 할까? 순간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은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으니 내가 어찌 됐든 그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열심히 했는데도 상대방이 오해를 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일을 잘한다고 믿는 수준과 그가 일을 잘한다고 믿는 수준이 차이가 난다면 나는 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나는 내 결심을 포기해버렸다. 나에 대한 인상을 바꿀지 말지는 그 사람의 마음이지 내가 노력한다고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가 생각을 바꾼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더 많이 노력하는 게 최선일까? 난 이미 최선을 다 했는데.


나는 그의 기준과 판단에 내 삶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가 뭐라고 말하든 말든 그저 내 몫의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예전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앞으로의 내가 그러하듯이. 열심히 했는지 안 했는지는 내가 알면 된다. 난 내 안에 존재하는 성실함과 업무 능력을 믿기로 했다.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자


첫 심리상담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 문제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계속 말했다. 그러자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다.

"당신은 그 상처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왜 대수롭지 않게 여기세요? 우린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사는지 잘 몰라요. 누구나 자신만의 짐이 있죠.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누군가에겐 교감 선생님과의 일이 그냥 '흥'하고 넘어갈 정도로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단순히 아프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수많은 세월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고통받으며 근무했지만 병을 핑계로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나 몰라라 한 적이 없다. 어떤 곳, 어떤 자리에서 일하더라도 최선을 다 했다. 오히려 대충 하거나 슬쩍 넘어가는 일은 내게 더 어렵다. 내가 여유가 있으면 기꺼이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왔고, 그게 편했다. 나는 그렇게 일했다. 그렇게 살았다.


이런 내가 '넌 아프니까 제대로 일 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아프다는 걸 핑계 대며 일을 안 하려고 하네.'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얼마나 충격일지 사람들은 알까? 아니다, 그들의 생각 따윈 알 필요 없다. 난 그날 몹시 아팠고, 슬펐고, 서러웠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렇게 하면 된다는 말은 결국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말과 같았다. 애써 포장할 필요도 없고, 애써 부인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나는 다시 쓴다.


나는 그날 몹시 아팠고, 슬펐고, 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