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증상이 안 나타나?

by 키키 리리

며칠 전, A에게 불안장애와 공황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내 우울증에 대해선 알고 있었으니 거기에 하나 더 얹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겨야 할 병도 아니라고 믿었다.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던 2013년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경계선에 걸쳐 둔 비밀을 슬쩍 밀어 세상으로 툭 던져놓은 순간, "그런데 왜 증상이 안 나타나?"라는 말이 돌아왔다. "약 먹고 잘 관리하니까요." 나는 뭐가 억울한지도 모르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소화시키지 못한 말이 심장이나 목구멍, 갈비뼈 사이 어딘가 숨어 있다가 명치를 꾹꾹 눌렀다. 시간이 갈수록 너무나 솔직하고 즉각적인 그의 반응이 계속 생각났다. 내 생각은 급기야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를 동시에 가진 자는 직장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비약과 해명하듯 던져놓은 내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틀을 깨는 일의 어려움


그에겐 불안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개인적인 사고의 틀이 존재할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잘 모르는 영역의 경우, 틀은 더욱 견고하고 즉각적으로 작동한다. 공황장애가 있다는 나의 말에 "그래서 학교 일은 제대로 하겠어요?"라고 말한 교감 선생님처럼.


사실 이런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일은 편하고 효율적이다. 애써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며, 생각 따윈 필요 없으니까. 나 역시 고정된 틀로 세상을 자주 바라본다. 교사가 흔히 갖는 틀은 과목에 따른 전형적인 교사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다. 영어 교사는 어떠하며, 음악 교사는 이렇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거침없이 튀어나올 때 당황스럽다. 말을 뱉어놓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고 넘어갈 때는 더 많다.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소수자의 권리와 동물권에 대해 공부하다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어쩌면 인생이란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세상이나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향해 시선을 두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의 반경을 넓히고 경계를 허무는 일도 마찬가지.


내가 가진 경험의 한계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세상이 그렇다. 하나의 잣대나 기준으로는 도저히 틀 안에 구겨 넣을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의 존재들. 어쩌면 우리 눈을 가리는 건 그 틀과 견고하게 작동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내 안에 존재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나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 때문이며, 내면에 공고하게 쌓아 올린 성을 허물어야 할 순간이 온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막상 내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충분히 이율배반적이고 이중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으며 비겁하게는 판단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만큼 틀을 깨는 일이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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