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내년 기획 업무가 너무 많아요."
"작년에 김리리 씨는 다 했는데?"
"......"
그렇다. 김리리 씨는 '나'이고, 나를 위해 애써 준 선생님은 학교에서 내 병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학교의 12월은 부서별로 내년 업무를 조정하고 확정하는 시기이다.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각 부서 부장과 교감이 모여 최대한 '합리적'으로 보이게끔 업무를 나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없지만 몇 번의 진통 끝에 최종판이 나온다. (최종판을 보고, 교사는 내년 업무 희망서를 교감에게 제출한다.)
난 부장님 밑에서 2년을 일했고, 내년(2021년)에 복직하면 다시 기획 업무를 한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참 미련하게 일했다. 대체 강사를 구해야 한다고 갑자기 주말에 연락이 오면 난 학교에 나갔다. 강사를 구하기 위해 인력풀을 뒤지며 전화를 수십 통 돌렸다.(휴일근무수당 따윈 없다. 사전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주말에 나와서 이런 일 했다고 아는 사람은 기껏해야 부장님 정도. 다른 이들은 모른다.
웬만한 일은 입 다물고 혼자서 했다. 한숨을 쉬거나 일이 많다고 투덜거리거나 '나 일 많이 했으니 좀 알아달라.' 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병가를 내 본 적도 없고, 무엇이든 최대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부장님 눈에는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생명체이자, 탁월한 일꾼이다. 게다가 부장님이 투덜거리는 내용을 귀 기울여 듣는다. 그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의 상심과 걱정에 한 자락 위안이 되도록 애를 쓴다. 일꾼에 이어 상담사 역할까지 한다. 이때까지 살면서 나만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도 그런 존재가 필요한데, 곁에 없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1년 차에는 위염에 시달려서 위내시경을 했고, 2년 차에는 우울증이 재발해서 살이 미친 듯이 빠졌다. 지금은 45kg 홀쭉이로 계속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영혼과 뼈를 갈아가며 일했다.
그렇지만 "김리리 씨는 다 했는데?"라고 말하는 부장님이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너니까 다 했다. 그러니 할 수 있다.' 이런 말이다. 말없이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렇다면 정말 울고 싶다.
이번 달 진료 때 의사에게 말했다.
"너무 힘들면 쉬려고요. 내게 우울증 있다고 구시렁거리든 말든 내 몸이 중요해요."
"맞아요. 의외로 그런 분 많아요. 애써 참지 말아요."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내 성정상 99.9% 버티고 참으며 일할 게 뻔하다. 작년에도 내가 아픈 걸 숨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몸과 마음이 아픈데 그걸 감추려니 훨씬 빨리 지쳤다.
어쩌면 부장님이 저렇게 말한 이유 중에는 내 책임도 있다.
'일이 너무 많아요, 지금 과부하 상태예요. 약 먹으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어요.' 이렇게 말을 해야 했다. 내 영혼과 뼈를 갈아가며 일하지 말아야 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생각하고 돌봐줄까? 나는 말없이 열심히 일한 게 아니라 나를 돌보지 않으며 일했다. 나를 아프게 만든 장본인이 '나'인 것만 같아서 몹시 슬프다.
난 아프고 싶지 않다.
열심히 일했으니 부장님이 나를 아껴주고 잘 돌봐줄 거야, 이런 기대는 쓰레기통에 버리자. '열심히 일한 자를 어떻게 더 굴릴까?' 고민하는 게 세상 이치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