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행운일 수 있을까?

by 키키 리리

"은수야! 넌 물통이 없니?"

은수는 대답 대신 지현이의 보온병에 담긴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지현이는 '선생님, 쟤 좀 말려주세요.'라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다른 사람 물통에 입 대고 마시면 안 돼. 너도 알지? 개인 물통 들고 다녀. 하다못해 컵이라도 말이야.”

나는 이렇게 말하며 상황을 수습했지만 녀석은 보란 듯이 물을 더 마셨다.

“선생님, 입 댄 거 아니에요. 뚜껑을 열어서 이렇게 들고 마셨다니까요.”

녀석은 능글맞게 웃고는 지현이에게 보온병을 돌려주었다.


지난 3월, 녀석의 담임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반 은수는 수업 안 듣죠? 그래도 걔, 공부하라고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나는 놀란 눈으로 담임을 쳐다봤다. 내 수업인데 왜 자기가 간섭하지? 당시엔 은수 담임에 대한 반감으로 은수가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에 3번씩 은수와 만난다. 수업 시간엔 늘 엎드려 잠을 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창밖만 쳐다보던 아이. 은수는 알이 없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방황하는 은수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원격 수업을 할 때는 화면을 꺼놓기 일쑤거나 집 천장만 비추던 아이였다. 내겐 은수는 학습에 대한 의지라고는 제로에 수렴하는, 공부에 손을 놓은 학생일 뿐이었다. 그런 은수가 물통이 없단다. 오늘 하루만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늘 들고 다니지 않았다. 물통을 잃어버렸는지 애초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다.


날은 점점 더워졌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는 복도 끝에 있는 정수기에서 연신 물을 받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보온병에 얼음까지 넣어서 오는데 은수는 어떻게 물을 마시는 걸까. 집에서 물통을 챙겨 물을 받아먹을 생각조차 못하고, 천 원만 주면 작은 물통 하나 살 수 있는 가게가 흔하지만 은수는 그러지 않았다.


며칠 뒤, 3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는 조용히 은수를 불렀다.

“오늘은 물통 들고 왔니?”

은수는 대답이 없다.

“컵은?”

“없어요.”

나는 가방에서 600㎖짜리 작은 물통 하나를 꺼냈다.

“여기 네 이름 적어라.”

나는 은수에게 네임펜을 건네며 말했다. 은수는 묵묵히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새 물통이니까 꼭 씻어서 먹어. 알았지?”

“네.”

은수가 작게 말했다.

“어서 가서 다음 수업 준비해.”

은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교무실 밖을 나갔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선생님이 한 마디 하신다.

“다행히 별말 없이 받아 가네요. 집에서 전혀 관리를 안 하는 아이거든요. 할머니와 사는데…….”


나는 은수에게 물통을 준 이후로 수업 시간에 들어갈 때마다 은수의 가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지퍼가 반쯤 열려 안이 훤히 보이는 가방에는 내가 준 물통이 무심히 들어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이번 여름도, 다가올 여름도 저 물통이 있어서 은수가 참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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