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할 생각 있니?"
나는 교실 뒷문에 기대서서 가은에게 물었다. 가은은 아무 말 없이 내가 내민 도서 목록을 쳐다보았다. 이미 한 달 전에 독후감 공모전에 대해 안내했고, 지금쯤이면 마음의 결정을 내릴 때가 된 거라 생각했는데 가은은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가은을 제외한 나머지 동아리 학생들은 내가 묻자마자 응모 여부를 재빨리 알려주었다.
가은을 알게 된지는 5개월 째다. 수업시간이든 동아리 시간이든 가은은 교실에 섬처럼 앉아 있었다. 학생들이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옆에 앉은 친구와 장난을 칠 때도 가은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책을 읽었다. 고집스레 침묵을 지킨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가은이 자신이 읽은 책을 통해 지난날을 담담히 썼을 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썼을 때, 이전에 읽었던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을 때,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에게 허락된 행동이라고는 책장을 넘기는 일밖에 없다는 듯이 움직일 때, 그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여행할 때 나의 시선은 가은에게 머물렀다.
침묵이 길어졌다. 나는 가은이 응모하지 않겠다고 말할까 봐 초조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 나온 책들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니까 더 결정하기 힘들지?"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알았다고 말하며 교실 문을 닫았다.
며칠 뒤, 쉬는 시간에 서둘러 교실로 뛰어갔다. 복도에서 가은을 보았다. 나는 가은에게 <<천 개의 파랑>>을 건넸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가은에게 빌려주고 싶었다.
"가은아!"
내가 숨을 헐떡이며 가은을 불렀다.
"일단 이 책 읽고 독후감 쓰고 싶으면 써. 안 써도 상관없어. 개학하면 선생님한테 돌려주면 돼. 알았지?"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가은은 포기할 것 같았다. 사실, 가은의 글은 동아리 다른 학생들의 글보다 눈에 띄었다. 가은은 도서관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서 있을 때나 구석 어딘가에 기대서 책등에 적힌 제목을 훑어볼 때 자신이 무척 행복하다고 썼다. 또한 따뜻하고 다정한 내용을 담은 책을 좋아하며, 자신도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은을 통해 내 과거 어느 시절을 떠올렸고, 우리는 분명 달랐지만 접점 또한 존재했다. 특히, 말 없는 자신을 어떤 아이라고 단정 지었을 때 나는 가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1학기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가은이 다가왔다.
"선생님, 공모전에 어떻게 응모하는 거예요?"
나는 침착하게 가은을 바라보았다. 지난 4개월 동안 가은은 내게 두 마디 이상 말한 적이 없었다. 가은의 목소리가 무척 낯설다고 느꼈지만 가은만큼 무척 차분했다. 오랫동안 이 질문을 준비했을까? 나는 가은에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가은은 내 옆에 서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빨리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저 한 번의 발화가 끝이었다. 가은은 마치 내 옆에 서 있기 위해 다가온 듯 보였다. 내게서 조금 떨어져, 시선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며.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살짝 더듬거리며 공모전 요강에 대해 알려줬고, 가은이 지난 시간에 제출한 서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가은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가은이 돌아간 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잘하는 짓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가은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내면에 작은 불씨를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횃불처럼 타오르지 않아도, 자신을 집어삼킬 만큼 강렬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자신을 지켜줄 불씨 말이다. 아직 가은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말 없는 자신을 -뭐라고 적었는지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아이라고 뭉뚱그려 단정 짓기도 했으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그 긴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의 다른 모습 또한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그랬듯, 가은 역시 그러리라 믿는다.
*글에 등장하는 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