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병원에 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나는 극단적으로 감정이 요동치던 순간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일이 여전히 부담스러워요. 물론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스스로를 고립시키죠. 몸 가장자리를 따라 굵은 선을 그어놓고 소용돌이치는 온갖 감정들을 숨겨요. 절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요. 그리고... 두어 번 울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의사가 놀라서 묻는다.
"시가 모임에 다녀와서 주말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제 말을 듣던 동료 A가 말했어요. '누가 보면 상다리라도 부러지게 음식 차린 줄 알겠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늘 그런 식이에요. 공감은 바라지도 않아요. 인정도 필요 없어요. 제발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공감 능력이 상당히 부족하군요."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 제가 교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자신이 필요한 파일을 달라고 했어요. 제가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요. 노트북을 꺼낸 뒤, 텀블러를 들고 정수기 쪽으로 갔어요. 제 모습을 계속 눈으로 좇더군요. 불편했어요. 빨리 내놓으라는 그의 요구가 느껴졌거든요. 자리로 돌아와 물을 마시는데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그래서 파일을 재빨리 전송한 뒤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변기에 걸터앉아 입술을 깨물고 숨을 죽였어요. 너무 슬펐어요. 견딜 수 없이 화가 났어요."
가슴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다. 갈퀴로 내 밑바닥을 박박 긁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방망이로 나를 납작하게 짓이기는 듯했다. 질퍽해진 나는 방망이와 바닥에 사정없이 달라붙어서 형체도 없이 뭉개졌다. 무방비상태로 맞은 말이 '농담'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믿은 순간,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른다. 나는 완벽한 연기자도 아닌데 감정을 잘도 숨긴다. 아니, 잘 숨기는 것이 아니라 꾹꾹 눌러놓는다. 이런 내 모습 때문에 슬펐고, 끝내 화가 났다. 내가 아무런 대응도, 반응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매번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나는 의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월 내내 아슬아슬했다. 미친 듯이 애를 쓰며 외면했지만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서서히 말라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싹 말라서 피는 증발하고 살은 쪼그라들며 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모조리 바스러졌다. 회색, 흰색, 검은색 재로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완전히 무너진 날이 찾아왔다.
B가 부탁을 하더니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를 때리겠다는 말을 했다. 농담이었을까?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B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성별도 다르다.
잠시 뒤, 그를 찾아가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감정의 온도가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사과를 듣고 건물 뒤편 주차장 벽에 머리를 박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체육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목덜미 위로 여름날의 햇살이 쏟아졌다. 지척엔 반짝거리는 생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는 비참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서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울고 있는 나와 그걸 지켜보는 나는 완전히 분리된 채 오랫동안 서 있었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왜 그랬어? 왜 그 말에 폭발했지?'
"제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맞아요. 놀랍군요." 의사가 말했다.
"그런데 왜 '때린다'는 말에 화가 났나요? 혹시 폭력과 관련된 경험이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에게 맞은 기억은 거의 없어요. 그 말에 왜 폭발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건 대단한 일이에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폭력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B선생님과 같이 근무하면서 쌓인 일이 많아서 그랬을 거라며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그 몇 달이 지났다.
우울증과 관련한 내 지난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답을 찾았다. 어린 시절에 이유도 없이 선생님들로부터 많이 맞았다는 글이었다. 팔뚝에 멍이 들 때까지 맞거나 손바닥을 맞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일명 '오토바이 타는 자세'로 벌을 서거나 두 팔을 번쩍 든 채 팔이 후들거릴 때까지 서 있어야만 했다. 어린 나는 괴로웠고, 선생님이 싫었다. 내가 저 밑바닥에 밀어 넣은 기억 속에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때린다'는 말에 급격히 흥분한 나 자신을 이해했다.
그렇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그때보다 훨씬 컸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는 B선생님에게 내 감정을 말하며, 사과를 요구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누구든 나를 이유 없이 상처 입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다. 지금부터 내가 나를 지키며 씩씩하게 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