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움받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우울과 불안

by 키키 리리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나는 별 일이 없이 잘 지낸다고 말했다. 살이 계속 쪄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직장 일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내 마음을 들끓게 했던 사건에 대해 의사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작가님의 브런치 글에,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다가 그 글이 논쟁거리로 부상하자 논란에 휩싸이기 싫어서 내가 단 댓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의사에게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제 행동이 경솔했고 신중하지 못했어요. 저라는 사람이 가진 그릇이 얕고 속이 좁다고 느꼈어요. 자책을 많이 했어요."


의사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럴 수 있죠.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댓글을 달 수도 있고, 생각이 바뀌어서 혹은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삭제할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잘 아는데 계속 자책하게 되었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신중하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했을까? 끝도 없이 후회했죠." 나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제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기거나 누군가가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못 견디겠어요. 실제로 그 사람이 저를 미워한다는 증거도 없는데 혼자서 비이성적으로 생각하죠."


"미움받아도 괜찮아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미움받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다만 이런 상황을 견딜 정도로 아직 내면이 단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두려움도 크고 여유도 없고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부모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제 아이들을 돌봐주시잖아요. 그런데 농담처럼 첫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너네 엄마는 받는 것도 많은 데 왜 돌려주지 않는 거지?'라고. 제가 이토록 오래 우울증을 앓는 것도 어릴 때의 상실감과 회복 불가능한 유년시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식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남겨주셨으니 나는 부모님에게 지금이라도 보상을 받으면 안 되나 하는 배은망덕한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을 욕한다고 생각하니 괴로웠고 그런 자신을 계속 미워했어요."


"아버지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여쭤보셨어요?"


"아니요. 이야기를 하기도 싫고 전화하기도 싫어요. 사실 친정집에 가는 것도 피곤하고 누군가에게 그게 설령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만나는 일이 신경 쓰여요. 아마 이런 저를 냉정하게 느끼셨을 수도 있고 매몰차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이런 말을 수년 전에 시어머니한테도 들었거든요. 넌 어쩜 그리 매정하냐면서. 전 시가를 자주 방문하지도 않고 전화도 거의 안 드려요. 친정 방문하는 것도 꺼리는데 시가는 말할 나위 없죠. 그냥 혼자 살고 싶어요. 그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고 만나기도 싫고 늘 혼자 있고 싶어요."


나는 요즘 내 상태가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왜 그렇게 에너지가 바닥이죠?"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도 잘 쓰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학교 생활도 잘하고..."


"누구에게요?"


"세상사람들에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요?"


"저도 알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요. 저의 비이성적인 신념이라는 사실도 잘 알아요."


"아마 그런 생각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요. 그리고 미움받는 것보다 내 한 몸이 편한 게 중요하다면 좀 이기적으로 지내도 됩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어요."


나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의사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그게 무엇이든 말이지.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


나는 이불에 고개를 박고 계속 울고 싶었다. 그러나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눈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동굴 속에 들어가서 깨지 않는 잠을 오래오래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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