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자신의 당연한 감정까지 부정하지 마세요

조금씩 생긴 변화

by 키키 리리

"선생님, 저 지금 몹시 불안해요."


그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예약환자 목록에서 내 이름이 삐죽 튀어나온 것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월요일) 10시가 원래 제 예약시간이거든요. 그런데 토요일 오전에 병원에서 예약 확인 문자가 안 왔어요. 그걸 토요일 저녁쯤에서야 알아챘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 바로 전화를 했어요. 예상대로 예약이 누락되었더군요. 제가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말하니 직원 분이 병원에 오라고 했어요. 자신들이 실수했으니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이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진료를 못 받을까 봐 걱정했어요?"


"조금요. 늘 예약환자가 많은 병원이라서 걱정하긴 했는데 그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나는 무릎 위에 올려둔 가방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만지작거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제가 어떻게 보면 항의를 한 거잖아요? 직원분들에게 피해를 끼친 게 아닐까 이런 걱정을 했어요."


"누군가에게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걸까요?"


"그건 또 아니에요."


오늘 대화를 창과 방패의 대결 같았다. 그가 원인을 추측해서 말하면 나는 계속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리 불안에 떨며 앉아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가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만약 김리리 씨가 실수를 했고 학부모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학부모님에게 사과를 했겠죠. 많이 당황스럽고 마음이 안 좋으셨겠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직원 분에게 이런 대응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사과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또 그건 아니에요."


우리의 대화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왜 이런지 말이다.




잠시 침묵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음, 제가 주말 동안 걱정한 부분에 대해서 전혀 감정적인 위로받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이 무척 어린아이 같아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일일이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헤아려주겠어요?"


"설령 그렇더라도 자신의 정당한 감정조차 부정하며 자책하지 말아요. 위로나 공감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욕구예요."


"아......" 나지막이 탄식을 했다.


그는 과거 나의 진료내용을 잠시 훑어보더니 말했다.


"과거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그렇군요."


"맞아요. 늘 감정을 억누르고 눈치를 살폈죠." 이렇게 말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나는 이 사실을 이미 예전에 받아들였고, 이 경험이 내 인생 전반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도 잘 알았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어렴풋이 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화를 낼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조차도 감정 발산이 어렵군요"


"네"


그가 부드럽게 나를 타일렀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지 말아요. 당연한 감정입니다. 인정해주세요."


나는 그의 따뜻한 말에 둘러싸여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는 지난번에 내가 추가한 약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 약 덕분에 들끓는 화와 짜증이 많이 가라앉았으니 당분간 이 약을 계속 먹기로 했다. 상황이 나아지면 약 용량을 줄이겠지.


진료 말미에 그가 말했다.


"김리리 씨가 주신 책을 대기실에 비치한 책들 사이에 꽂아두었거든요."


"네. 알아요. 지난번에 말씀해주셨고, 오늘도 책이 있는 걸 봤어요."


"어떤 환자 분이 책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달라고 하셨어요."


"오, 그럼 사라고 하세요!"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냥 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몇 권 더 샀어요."


"아......"


"그분이 꼭 전해 달래요. 책 내용이 너무 좋다고요."


그 말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는데 의사의 배려와 얼굴도 모르는 환자 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전자책 낸 것도 얼마 전에 판매 권수가 늘었더군요. 누가 읽기는 읽는가 봐요. 이게 제 자존감을 세우는 데 영향이 커요. 긍정적으로 말이죠."


"잘하고 계시네요."


그가 조그맣게 웃었는데 나도 따라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또 한 번의 진료가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음 달 진료까지 또 부지런히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세상을 돌아다니겠지.


7월에는 내가 조금 더 나아지길 기대하며 병원 밖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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