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을 스스로 다치게 한다는 의미의 '자해'가 나와 친해진 시기는 첫 아이가 태어나고 몇 달 뒤였다. 병원도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던 날이었다.
빈 집에 생후 50일 된 아이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기를 안고 뛰어내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기엔 나는 쫄보였다. 대신 날카로운 볼펜으로 내 몸 여러 곳을 죽죽 그었다. 물과 비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자국은 흡사 문신처럼 피부 안쪽까지 바꿔놓았다. 한 번 그은 곳은 다시 긋지 않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피부 위에 다시 그었다간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심장은 누군가 양 손으로 꽉 쥐어짜듯이 아팠다. 통증이 가슴께부터 시작해서 머리로, 때론 발끝으로, 가끔은 눈까지 옮겨갔다.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몸이 무너질 때면 바닥에 누워서 울었다. 빠져나갈 곳 하나 없이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양 손을 꼭 쥐고 온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게 나 좀 살려달라는 뜻임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 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몰랐고,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 우울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주 멀쩡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면 "나는 이런 상황 때문에 몹시 힘드니 당신은 이렇게 도와줘. 그리고 병원에 가야겠어."라고 정확히 말했겠지. 그 정도로 말할 수 있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거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도와달라고 말한 적도 없었으며, 혼자 오롯이 감내하는 삶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해낸 방법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행위가 나를 더욱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멍이 든 허벅지와 볼펜 자국으로 엉망이 된 팔을 남편에게 매번 보여주었다. 시위였다. 고성과 힘의 과시 따윈 없었지만 남편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엔 충분했다. 나는 어떤 면에서 꽤나 잔인했고, 영악했으며 이기적이었다. 나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베란다에 주저앉아 재앙으로 가득 찬 내 삶을 떠올리며, 내가 선택한 삶이 나를 비극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믿으며 통곡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개월을 지켜본 사람은 아마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거다. 이런 배우자와 수개월을 보낸다면 멀쩡하던 사람도 멘털이 나가떨어지겠지. 남편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절망적이었을 때가 이 시기였다.
오늘 누군가의 부음을 들었다. 우울증과 응급실이라는 단어가 남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꽤나 잘 기억하고 있었다. 우울증 환자는 혼자 두면 안 된다니까! 나는 안타까워서 남편에게 소리쳤다. 왜 입원 안 시켰어? 약은 안 챙겨 먹었대? 나는 산 자만이 할 수 있는 뻔한 질문을 하면서 우리 집 아이들에게 먹일 김밥을 열심히 말았다. 제비 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엄마가 주는 김밥을 받아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내 새끼들이 김밥을 맛있게 먹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는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였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라는 거창한 말 따윈 하지 않아도 그렇게 산 자의 삶이 굴러간다는 사실쯤은 알만한 나이였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김밥이라는 단어를 끼얹으며 몇 시간을 보낸 나는 다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슬픔이 치밀어 올라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더 이상 내 몸에 볼펜으로 긋지 않는다. 아주, 아주 극심히 우울이 치밀어 오를 때면 내 몸을 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때론 이 충동에 백기를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약은 잘 챙겨 먹으며 병원도 꼬박꼬박 다닌다. 나 잘하고 있다고 과시하는 게 아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나는 내가 살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다른 이의 죽음 앞에, 비겁하게도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난 그래도 살아있구나, 살아있기로 선택했구나, 이런 마음이 앞서서 기분이 이상하다.
나와 비교하지 않고, 나 잘하고 있다고 떠벌리지 않고, 그의 죽음을 오롯이 애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그날을 기다리는 게 허무맹랑한 믿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사진 출처: Abigail Ducote, Unsplash
*글 제목: 디어 클라우드 노래 '사라지지 말아요'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