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릴 줄 몰랐지? 아마 연애할 때도 우울증이 있었을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연애할 때, 왜 그렇게 불안해했는지 조금은 이해돼. 그래도 좋은 사람인 줄은 알았어."
수년 전에, 내가 거의 죽을 지경으로 통곡하고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있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나를 껴안고 제발 진정하라고, 그러지 마라고 외쳤다. 우리 둘 다 눈물범벅이었고, 겨우 잠든 아기가 깰까 봐 입술을 깨물어가며 울었다. 나는 그때 남편이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기도 했다.
생에 대한 미련 따윈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밤마다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아내를 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때리고 또 때리는 아내를 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칠흑 같은 어둠과 모래로 쌓아 올린 시간은 너무나 손쉽게 무너졌다. 난 정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 둘의 차이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생각한 소멸은 '쉼'이나 '도피', '도망' 정도. 소멸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으니 나는 다 부여잡고 살았고 그것이 버거워서 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아마 남편도 놀랐을 것이다. 미쳤거나 미치기 직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난 그늘이 많은 사람이다. 누군들 그늘이 없는 사람이 있겠냐만 나의 시간은 대체로 흐리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인생이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물론 그런 사람들조차 그늘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그늘과는 절대적인 총량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늘이 많지만 좋은 사람인 줄은 알았어.
다른 사람의 그늘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고 어렵다. 고단하고 기약이 없으며 때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한다. 이상하고 신기하다.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심지어 숭고해 보이기도 한다.
난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라서 항상 내가 먼저다. 내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내 슬픔을 우선순위에 둔다. 내 한 몸 편한 것이 좋고, 나 혼자 자유롭게 떠도는 것이 좋다.
지난 토요일에 상담을 마친 뒤,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들어갔다. 남편은 애 둘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연신 자신의 뒷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두통이 심해 보였다. 나는 그가 걱정되었다. 요새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잠도 잘 못 잤다.
가끔 그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는 너무 힘드니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거나 몸이 피곤하니 애들 돌보는 걸 같이 해달라고 말하거나. 너무 빈틈이 없으니까 난 자꾸 돌아다닌다. 그의 빈틈을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강철 인간도 아니고, 천하무적도 아니다. 나를 위해, 내 그늘이 줄어드는 걸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모습은 눈물겹고 고맙지만 때론 내가 너무 미안해진다.
게다가 우린 주말부부다. 주중에 하지 못한 아빠와 남편 역할을 주말에 몰아서 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그는 나를 만나서 후회한 적이 있을까?
그가 결혼 전 꿈꾸던 가정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상상이나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의 인생에 우울을 잔뜩 껴안은 여자가 변수처럼 등장했고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그늘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도 이제 그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고 싶다.
그가 지쳐 쓰러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