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완벽주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가 말했다. 집에 여유분의 약이 있어서 5주 만에 병원을 방문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늘 그러하듯 나는 준비해 간 대답을 늘어놓았다.
"우울이 바닥을 칠 때면 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어요. 두어 번 토하기도 했죠. 이상하게도 병원에 다녀온 그 주에는 특히 우울해요. 그리고 차츰 나아지다가 다음 병원 진료 때가 다가오면 점점 멀쩡 해지죠."
"언제부터 그랬어요?
"몇 달 된 거 같아요. 음...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약을 늘리기 싫어서 제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게 아닐까요?"
내 말을 듣자마자 의사가 "으헤헤헤."하고 웃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조금 웃었다.
"병원에 와서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일이 힘들었어요? 감정적으로 힘드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이제 해봐야겠네요."
나는 눈을 잔뜩 찡그리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얼마 전, 부장님한테 톡이 왔는데 '리리 씨, 부서 단톡방에서 나갔네요?'라고 말씀하시며 업무 이야기를 하셨죠. 그냥 하신 말씀인데 저는 부장님이 저를 비난한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나는 내가 별 일 아닌 일에 부루퉁해지는 별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의적인 표현일 수 있는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군요."
"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인 존재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사소하게 건넨 어떤 한 마디, 그 한마디가 마음에 박혀서 안 빠져나가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냥 넘기고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런데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아요. 그들이 불편해요. 물론 전 절대 표시 내지 않지요."
"그 한 마디가 꽤 크게 상처로 남는군요."
"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어요. 특히 집 근처에서는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공동현관문 비번을 누르다가 윗집 아저씨를 발견했어요. 전 그대로 돌아서서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그럴 때가 무척 많아요. 얼마 전에는 집 근처에서 제자를 만났는데 모르는 척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제가 교사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요. "
나는 말하는 내내 눈을 뜨지 않았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감정을 토로하는 일이 의사 말대로 감정적인 소비가 크다고 느꼈다. 게다가 늘어놓는 이야기 속의 나가 결코 일반적이거나 평범한 모습은 아닌 것 같아서 슬펐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을 떴을 때, 눈물이 조금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당신을 알면 어떨 것 같아요?"
"하--"
나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한 번 파봅시다."
그가 말했다.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서 여기에 앉았는데 의사는 답을 나보고 찾으란다. 사실 그의 질문은 옳고, 답 역시 내가 찾아야 하는 게 맞지만 왠지 하기 싫었다. 내 입에서 어떤 답이 딸려 나올지 순식간에 예상되었다.
"음...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이웃집 사람도, 집 근처에서 만나는 제자들도 모두 제가 교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헐렁하거나 편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있어요. 후줄근할 때도 있지요. 재활용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거나 음식 쓰레기 통을 들고 있기도 하고, 제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있기도 하죠. 이런 내 모습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끊임없이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교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믿어요."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과 완벽주의 성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아..."
나는 나지막이 소리를 내뱉고는 침울하게 말했다.
"뭔가 잘못됐군요. 그들은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났을 거라 생각하겠죠. 아마 저에게 관심이 없을지도 몰라요. 아니, 관심 없을 거예요. 학교에서는 교사지만 밖에서는 만난 그들에게는 그저 '아는 사람'일 거예요."
의사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약을 늘리기 정말 싫어요?"
지난달 진료 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의사는 약을 늘리기 싫으면 감정 기복을 완화시켜주는 다른 약을 함께 처방해주겠다며 제안했다. 신경안정제는 아니지만 지금 먹는 항우울제처럼 의존성은 없다고 말했다.
"일단 150mg으로 먹어본 뒤, 그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그 약도 먹어볼게요."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발이 좀처럼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약만이 정답일까? 약을 통해서만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우울증과 수년을 함께 살았는데, 어서 헤어지고 싶은데 그 헤어질 시간이 더 멀어졌구나.
다음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최근 내가 느낀 온갖 감정들에 대해서. 달아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 내가 쓰는 글에 대해 확신이 없던 날들. 또 무엇이 있을까?
"그때 그 학생은 상처 받았을 거야. 선생님이 자신을 모르는 척했으니까. 나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나도 내가 힘들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으면 다음엔 인사 잘해주면 돼."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곧이어 남편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나는 어쩐지 울고 싶었다.
"자기가 느끼는 어떤 감정도 옳아. 다 그럴 수 있는 거야."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고마워."
내가 나를 이해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